중앙일보 2024. 8. 26. 00:30
‘숲은 우거질수록 좋다’고 하더니
총선 이어 전대서 반대파 초토화
DJ 대통령, 노무현의 공격도 허용
민심과 멀어지면 집권은 어려워
1986년 7월 김영삼 신한민주당(신민당) 고문은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내게 격정적으로 속마음을 토로했다. “김대중(신민당 고문)이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이민우(신민당 총재)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들어요. 미스터 리! 정치하기 너무 힘들어….” YS는 필생의 라이벌 DJ, 대리인 이 총재에게 불만이 많았다.
칠순을 넘긴 이 총재는 양김(兩金)의 훈수에 힘들어 했다. 현안에 대해서 물어보면 항상 “‘논란’을 해봐야지”라고 했다. 하도 시비를 거는 사람이 많아서였을 것이다.....당은 양김 말고도 사공이 많은 배였다. 이 총재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우황청심환을 삼키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이렇게 반목하면서도 끊임없이 타협했고, 합의를 이뤄냈다. 양김은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였지만 동지로서 철저히 협력했다. 독재의 탄압에 맞선 민주 정당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집권 민정당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는 사당(私黨)이었다. 반면에 신민당은 통제되지 않는 백가쟁명의 노선 투쟁으로 늘 어수선했고, 갈등과 열망으로 들끓었다. 눈치보지 않는 말의 자유가 넘쳤고, 민주주의의 원초적 박동이 느껴졌다....신민당은 마침내 87년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해 전두환 독재를 종식시켰다.....과정에서는 직선제를 관철할 것인가, 내각제로 타협할 것이가의 문제로 치고받고 싸워 바람 잘 날 없었다.....그러나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하면서 잠들었던 민심을 깨워 흔들었고,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썼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정상이 아니다. 이재명 대표를 비판하면 ‘국민의힘 첩자’를 의미하는 ‘수박’으로 몰린다. 수박은 겉은 푸르지만 속은 붉다. 민주당의 상징색은 파란색, 국민의힘은 빨간색이다. ‘수박’은 공안기관에서 우파로 위장한 ‘빨갱이’를 색출할 때 사용하던 은어(隱語)였다. 이게 제1 야당의 일상어가 된 현실이 기가 막히다.
이 대표는 총선에 이어 전당대회에서도 반대파를 초토화시켰다. 85%의 몰표를 쓸어담았고, 당헌·당규까지 고쳐 1인 숭배의 신정(神政)체제를 구축했다. 그는 7개 사건, 11개 혐의로 4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이 대표는 “‘이재명 단일 체제’라 비난받을 정도로 (당이) 너무 한쪽으로 몰리는 게 약간 걱정”이라며 “숲은 우거질수록 좋고, 경쟁은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 영혼 없는 립서비스다..... 비주류의 씨를 말리는 정당은 교조의 노예이고, 민주주의의 불청객이다. 동토(凍土)에서 민주주의를 만개(滿開)시켰던 제1 야당의 타락은 비극 그 자체다.
https://v.daum.net/v/20240826003032051
[이하경 칼럼] 이재명 신정체제…민주주의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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