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9. 7. 00:41
[아무튼, 주말]
[손관승의 영감의 길]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길을 떠날 때마다 우리는 고민한다. 무엇을 남겨두고 무엇을 챙겨 갈까? 모자, 운동화, 옷, 책을 비좁은 가방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필요성의 이유만이 아니라 몸에 휴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이 사람마다 따로 있기 때문이다.....세계적인 조각가 브루노 카탈라노의 ‘여행자’ 시리즈처럼 가슴이 뻥 뚫린 채 가방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독일 작가 스벤 슈틸리히의 책 ‘존재의 박물관’에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많은 사람이 직장을 떠나야 했을 때의 증언이 담겨 있다. 여직원들은 화분, 사진, 고객의 명함과 함께 대부분 책상 밑에 몇 켤레씩 두고 있던 구두를 챙겨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직장은 일터인 동시에 생활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내가 앉던 정든 의자와 책상에 내일이면 다른 누군가가 앉는다는 상상이 유쾌할 리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상실감은 더 크다. 무더위가 절정이던 지난달 장모님이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장가를 가겠다고 처가를 찾아가야 했던 젊은 시절 어느 날이 떠올랐다. 나는 봉천동 산동네 월세를 살고 있었던 반면, 처가는 압구정동의 아파트였다. 여러 가지로 선뜻 발걸음과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따뜻한 웃음으로 받아주셨다.
민족과 종교에 따라 장례 문화가 다르기는 해도 애도 의식은 고인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보았던 사람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였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것.....유품 정리를 하던 아내는 장모님의 서랍을 열다가 그만 눈물이 터졌다. 서랍 속에 놓여있던 진녹색 가계부와 검은색 탁상 수첩 때문이었다....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수첩 여백에 마치 어린아이가 글자 연습하듯 장모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몇 년 전 불행하게도 찾아온 혈관성 치매의 결과였다. 가족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기 자신을 찾으려 애쓰던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의 현장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이 옳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 정신적으로 죽는다.” 이처럼 자신에게 닥친 비극의 한가운데서도 장모님은 생전에 입던 옷과 이불, 별로 사용한 적이 없는 예쁜 그릇과 유리잔 같은 것을 따로 분류해 두었다....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https://v.daum.net/v/20240907004110589
치매 장모님 유품 정리하다 ‘기억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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