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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사 기자의 귀썰미] 여자 교황은 실존 인물이었을까

바람아님 2014. 8. 13. 20:13

(출처-프리미엄조선 2014.08.13 )


교황(敎皇)의 역사는 길다. 
성 베드로의 정통성을 잇는 이들은 지난 2000여년간 신앙, 역사,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겨왔다. 
오는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가 266번째 교황이다.

길었던 역사만큼 교황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전설 등도 많다. 
그 중에서도 바티칸이 골머리를 앓는 것이 바로 여성 교황 ‘조안’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 역사학자와 종교학자들은 조안이 허구의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일부에선 기록과 예술품에서의 흔적을 근거로 사실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만큼 소문의 뿌리가 깊고 진하다. 
지난 2009년 제작된 손케 보르트만의 영화 '여교황 조안'에서의 조안의 모습/영화 캡쳐
지난 2009년 제작된 손케 보르트만의 영화 
'여교황 조안'에서의 조안의 모습/영화 캡쳐
2년 7개월 4일 동안 재임했다는 여 교황 조안

여(女) 교황 조안의 전설은 13세기 장 드 메이가 쓴 교황 연대기를 뿌리로 한다. 
비슷한 시기 조안을 언급한 마틴 폴로노스의 책이 널리 읽히며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들에 따르면 조안은 교황 레오 4세와 교황 베네딕토 3세 사이인 855년부터 2년7개월 4일간 재위했다. 
(장 드 메이는 조안의 재위 시기를 1099년이라고 기술했다.)

어떻게 여성인 조안이 교황직에 오를 수 있었을까. 기술에 따르면 과정은 이렇다. 당시는 여성이 살기에 너무나 척박했던 
시대였다. 어떤 여성도 거리에 마음대로 나다닐 수 없었고, 여성들은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조안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의 마인츠 지방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움막에 살았고, 그렇게 30~40년을 살다가 죽는 것이 보통의 경우였다.

그러나 조안은 운이 좋았다. 당시 영국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독일에 들여온 덕에 ‘fulda’라고 불리는 수도원이 생긴 것이다. 
이곳은 당시 주민들에게 책을 읽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이는 남자들에 한정된 특권이었다.

이 때문에 몇몇 여성들은 남성으로 변장해 이곳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마틴 폴로노스에 따르면 남성으로 변장한 조안은 이곳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고, 의술 등 다방면에 능숙한 지식을 
익히게 됐다고 한다.

그가 남장을 들키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척박했던 환경 때문이었다. 
대부분 영양결핍 상태였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를 불문하고 신체적으로 수척한 상태인지라 성 구분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목욕 문화도 발달하지 않아, 옷을 벗고 씻지 않았던 것도 구분을 어렵게 했다. 
당시에는 온 몸을 씻는 대신 얼굴과 손발만을 부분적으로 씻었다.
교황 조안이 출산을 하는 장면을 담은 슈판하임의 판화/위키피디아
교황 조안이 출산을 하는 장면을 담은 슈판하임의 판화/위키피디아
미사행렬 중 출산, 비극적 최후

이야기는 조안의 최후를 이렇게 전한다. 
그는 라테라노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미사 행렬을 하던 중, 갑자기 통증을 느꼈다. 임신에 따른 진통이었다. 
그리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조안이 그 자리에서 애를 낳은 것이다.

교황 조안의 최후를 놓고는 의견이 다분하다. 
조안이 그 자리에서 화난 군중에게 돌로 맞아 죽었다는 설이 있지만, 
조안은 수녀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고 그의 아들은 오스티아 지방의 주교가 됐다는 설도 있다. 
공통적인 것이라면 조안이 그날부로 폐위 됐고, 성직자들은 역대 교황 목록에서 조안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것이다.

교황 조안이 실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여러 예술 작품에 그의 흔적이 녹아있다는 근거를 든다. 

대표적인 것이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17세기 
유명한 예술가)의 조각이다. 
그는 이곳에 교황관(papal crown)을 쓴 8가지 모습의 여자를 그려 놓았는데, 
이 중 하나가 자궁에서 태어나는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것이 교황 조안의 아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바티칸 박물관에는 구멍 뚫린 의자가 존재하는데, 
조안 이후 교황 후보들의 성별을 확인하려고 만든 의자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조안에 속았던 교황청이 교황 선출 때 교황 후보자의 고환을 만져보고 남자임을 확인하려 했다는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소설과 같은 이야기”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 많은 종교학자는 단호히 고개를 젓고 있다. 
이들은 조안 교황의 이야기가 실제 폴로노스가 쓴 것이 아니며 그가 죽은 후 덧붙여진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들은 중세에 수도승들이 이 이야기를 베껴 쓰는 과정에서 이런 전설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한 번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자 수도승들이 그대로 이를 복사했고, 이것이 실제 역사인양 착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바티칸 비밀 문고의 책임자를 지냈던 찰스 번스는 “조안의 이야기는 거의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소설과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베르니니의 조각 역시, 조안이 아닌 교황의 조카를 형상화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조안의 존재를 믿는 이들이 적지 않아 ‘여성 교황’을 둘러싼 의문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