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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86] 노벨상 유감

바람아님 2014. 10. 14. 10:51

(출처-조선일보 2014.10.14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또 한 번 노벨상 광풍이 지나갔다. 
해마다 이맘때면 시인 고은 선생님 댁으로 몰려갔던 취재진이 금년에는 카이스트로 일부 이동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심심찮게 노벨 수상자를 족집게처럼 맞힌 관록이 있는 학술 정보 제공 업체 톰슨 로이터가 이번에 
유룡 특훈교수를 유력한 노벨 화학상 수상자 명단에 올렸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수상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유 교수는 이미 나노다공성 연구로 2010년 '브렉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자연과학자다. 
노벨상을 수상하느냐 않느냐는 그가 이미 성취한 과학의 기여도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고은 선생님이 설령 영원히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미 세계적인 시인으로 추앙받는 
그의 명성에 아무런 흠이 되지 않는 것처럼.

일본은 이번에도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과학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일본은 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느냐'며 과학계에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나는 이야말로 좀 거칠게 표현하면 '도둑놈 심보'라고 생각한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 수준의 뒷받침만 해주면 10년 내로 
유룡 교수처럼 유력한 후보군에 오를 수 있는 과학자들이 수두룩하다. 
마땅히 연구 여건부터 마련해주고 수상 욕심을 내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아카사키 교수는 "유행하는 연구에 매달리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최고"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본식 한우물 파기는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다. 
미국과 일본 같은 과학 선진국에서는 연구 성과만 좋으면 계속 연구비 지원을 받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연구 제목으로는 연구비를 받기 어렵다. 
한 번도 못 받은 사람이 수두룩한데 이미 받아먹은 사람이 왜 또 손을 벌리느냐는 눈총을 받는다. 
번번이 다른 우물을 파는 척하며 한우물을 파야 하는 풍토에서는 노벨상 수상은 묘연하다. 
운 좋게 하나 받은들 그게 이 땅의 과학 발전에 무슨 기여를 할지 그 또한 묘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