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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88] 여울

바람아님 2014. 10. 28. 11:09

(출처-조선일보 2014.10.2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얼마 전 지인 가족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하던 중 각자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다섯 가지를 말해보기로 했다. 막상 꼽으려니 그리 쉽지 않았다. 
나 역시 애써 다섯 가지를 얘기했지만 이제는 그중 세 가지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 해질녘, 개울….

나는 평생 학교가 그냥 좋았다. 
동네 골목에서 노는 것도 좋았지만 너른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일요일에도 꾸역꾸역 책가방을 챙겨 메고 학교에 가서 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끝내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교수가 된 듯싶다. 
어느덧 공부와 폭력에 찌들어버린 우리 학교, 
그리고 그곳에 가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나는 하루 중 어둑어둑 해질녘을 제일 좋아한다. 
그 어슴푸레한 '빛결'이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가지런히 빗겨주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돌돌거리며 흐르는 개울을 좋아한다. 미국에 유학해 1년이 넘도록 개울다운 개울을 보지 못했다. 
가슴 한복판에 무거운 돌 하나가 댐처럼 막아서 있었다. 
이 땅에서는 숲으로 몇 발짝만 들어서면 귀가 먼저 찾아내는 개울이건만 
내가 살던 미국 땅에는 시내는 있어도 돌 틈에 재잘대는 개울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단순한 개울이 아니라 여울이란다. 
골짜기나 들판에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모두 개울이라면 바닥이 얕아지거나 폭이 좁아져 물살이 빨라지는 곳이 여울이란다. 
요즘 단풍놀이가 한창인데 그 붉은 이파리들을 흔드는 여울 소리가 없다면 참 건조할 것 같다. 
김소월 시인의 '개여울'에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이란 구절이 있다. 
'물은 흘러도 여울은 여울대로 있다'는 옛말을 떠올리면 '굳이 잊지 말라는' 시인의 '부탁'이 참으로 절묘하다. 
과연 우리 삶에서는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여울처럼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날마다 해질녘이면 개여울에 나가 앉아 하염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며 살 수 있으면 정말 좋으련만.


개여울 /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 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가도 : 가기는 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