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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89] 판 하빌리스(Pan habilis)

바람아님 2014. 11. 4. 09:12

(출처-조선일보 2014.11.04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1961년 11월 4일 '다윗' 그레이비어드(David Greybeard)와 골리앗(Goliath)은 나뭇가지를 꺾어 
잔가지들을 쳐내며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매끈하게 잘 다듬어지고 적당히 구부러진 가지를 흰개미 굴 속으로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잠시 후 다시 끄집어낸 가지에는 흰개미들이 줄줄이 들러붙어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나뭇가지 낚싯대에 매달린 흰개미들을 입술과 혀로 날름날름 집어먹었다. 
인간이 아닌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최초의 발견이었다.
53년 전 바로 오늘 이 현장을 목격하여 과학계에 알린 최초의 인물이 제인 구달이다.

제인 구달을 아프리카에 보내 침팬지를 연구하게 한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1960년 동아프리카 올두바이에서 발견한 인류 화석을 분석한 결과 그들이 석기 도구를 제작해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라는 학명을 붙였다. 
하지만 제인 구달의 발견 소식을 접한 리키 박사는 "이제 우리는 도구와 인간의 정의를 다시 내리거나, 
아니면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구를 제작해 사용하는 침팬지 '판 하빌리스(Pan habilis)'의 등장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 위대한 발견이었다.

팔순 나이에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려 지구촌 곳곳을 찾아다니는 제인 구달이 생명다양성재단 초청으로 방한한다. 
11월 25일에는 이화여대에서 '인간과 사회, 자연에 관한 연구와 성찰을 장려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제정'된 김옥길 강좌의 
연사로 대중 강연을 한다. 특히 이번 강연에는 이화여대 음악연구소 주선으로 세계적인 작곡가 박영희 독일 함부르크대 
교수의 생명 사랑 헌정 음악이 초연될 예정이라 그 의의가 각별하다. 
이에 앞서 23일 제인 구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숲 속에 마련된 '제인 구달의 길' 봉헌식이 있을 
예정이다. 함께 걸으며 제인 구달의 생명철학에 흠뻑 젖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