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서건 세금은 정치 문제다.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구분은 흔히 감세를 옹호하느냐, 증세를 옹호하느냐에서 나뉜다. 세금을 내더라도 누가 더 많이 내는가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세금 논쟁에는 정치 색깔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차이점만 너무 부각시키다 보면 사회에 갈등이 증폭된다. 갈등의 여지를 줄이는 방안이 많이 나올수록 정치 진영들 간에 절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필자는 이런 방안 중 하나로 교육비 지출, 특히 대학 관련 교육지출을 대폭 줄이는 방안을 여야가 함께 진지하게 검토할 것을 권하고 싶다. 경제활성화와 재정부담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면서 청년실업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기적을 얘기할 때면 흔히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꼽는다. 자식들 교육은 어떻게든 시켜야 한다는 의식이 아직도 많은 학부모를 지배하고 있고 교육비 지출은 줄이면 안 되는 성역(聖域)으로 취급받고 있다. 실상은 180도 바뀌어 있다. 교육은 현재 한국의 최대 부실산업이다. 이 부실산업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투자가 계속되면서 가계 소비가 압박을 받고 청년실업 문제는 곪아 터져 있는 상태다.
교육은 만성 적자 산업이다. 대학 교육은 이 중 가장 심각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대학 졸업생 중 과잉학력 비율이 42%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찾지 못하거나, 하향 지원해서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을 합친 숫자다. 과잉교육으로 인해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늦게 진입하게 된 것만으로도 최대 19조원의 손실이 나는 것으로 추산한다.
반면 산업 현장에는 필요한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제조업으로 오는 젊은이들이 끊겨서 ‘숙련 단절’을 걱정하는 기업들도 많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인력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국내 투자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 반면 많은 젊은이는 4년제 대학 졸업장을 딴 뒤 눈높이만 높아져 아무 일도 안 하고 사회에서 겉돈다.
교육지출은 현재 저성장의 원인을 제공하는 면도 있다. 중산층 가계에서 가장 큰 부담은 부채 원리금 상환이고 그 다음이 교육비 지출이다. 이러한 경제적 비용들에 청년과 학부모들의 좌절감, 노후 대비 소홀 등으로 벌어지는 여러 문제를 더하면 과도한 교육 투자가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극(悲劇)을 양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정부 정책이나 학부모들의 지출 행태는 과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예산에서 대학의 명목등록금 총액(14조원)의 절반(7조원)을 국가장학금과 학교 자체장학금 등으로 지원해 2015년에는 ‘반값 등록금’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런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는 4년제 대학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 재정지원도 줄이고, 가계지출 부담도 경감시키고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해 주는 길이 될 것이다.
정부에서는 또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 그러나 대학 진학률이 8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데 중진국인 한국에서 이 많은 사람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교육 수준을 낮춰 일자리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는 게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은 5년 후인 2020년부터 생산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일본식 불황으로 가지 않으려면 생산인구 확충이 시급하다. 그런데 생산인구가 확충되기는커녕 생산인구 중 학생으로 남아 있거나, 졸업 후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는 ‘니트(NEET)족’의 비중이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젊은이들을 생산활동에 빨리 편입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최대 부실산업인 교육 분야에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벌어진다는 것이 보여야 내수와 투자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증세-복지 논쟁이 보다 건설적으로 흐를 여지도 생길 것이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