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영원에 대한 갈구 '블루'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셰브르에서 바라본 제네바 호수' (1905년, 캔버스에 유채, 바젤 미술관) 세상에 스위스의 국민화가 페르디난트 호들러(1853~1918)만큼 팔자가 기구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여덟 살 때 결핵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뒤이어 두 동생도 같.. 文學,藝術/아트칼럼 2014.09.19
[그림이 있는 아침]색채의 마술사, 그 속엔 아픔이… 아우구스트 마케의 ‘테게른제 풍경’ (1910년, 캔버스에 유채) 1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예술가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그중에서도 독일 표현주의자 아우구스트 마케(1887~1914)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색채 감각으로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모은 천재 화가였다. 안타깝게도 전쟁이 .. 文學,藝術/아트칼럼 2014.09.17
[그림이 있는 아침] 성 베드로는 블루오션의 원조 마사초의 ‘성전세(聖殿稅)’ (1427, 프레스코,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교회) 예수가 제자와 함께 갈릴리의 작은 마을인 가버나움의 한 교회당에 들어가려 하자 세리가 앞을 막고 나섰다. 돈을 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예수가 베드로(왼쪽 물가의 인물)를 시켜 물.. 文學,藝術/아트칼럼 2014.09.14
[그림이 있는 아침] 사랑의 늪에 빠진 두 연인 아리 셰퍼의 ‘정원의 파우스트와 그레트헨’(1846,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졌다. 양손을 맞잡은 두 연인은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의 8부 능선을 넘은 듯하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평생 프랑스에서 활동한 아리 셰퍼(1795~1858)의 그림이다. 늙은 파우스트 박사.. 文學,藝術/아트칼럼 2014.09.13
[그림이 있는 아침] 눈물 머금은 피에로 장 앙투안 와토의 ‘피에로’ (1719,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박물관) 어릿광대 피에로가 한껏 모양을 낸 채 무대 한가운데에 섰다. 연극의 감초 역할을 하던 그가 무대의 주인공이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것 같다. 남을 웃기던 그에게 .. 文學,藝術/아트칼럼 2014.09.12
[그림이 있는 아침]신화를 밀어낸 현세중심주의 피터르 브뤼헐의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1555, 캔버스에 템페라, 브뤼셀 왕립미술관)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건축가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미움을 사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미궁에 갇힌다. 위협을 느낀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 文學,藝術/아트칼럼 2014.09.11
[그림이 있는 아침]'밤의 여신' 아르테미스 장 마르크 나티에의 ‘아르테미스로 분장한 퐁파두르 후작부인’(1746,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박물관) 역대 프랑스 왕들은 자신들의 고결한 태생을 강조하고 정치적 선전을 위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자주 빌리곤 했다. 그들은 자신을 영웅 헤라클레스나 태양신 아폴론에 비유했다. .. 文學,藝術/아트칼럼 2014.09.10
[그림이 있는 아침] 신사의 눈길이 머무는 곳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발코니의 남자’ (1880,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한 남자가 발코니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파리 최고의 번화가인 오스망 대로. 19세기 파리의 도시계획을 주도한 오스망 남작의 이름을 딴 이 대로는 화려한 건물과 백화점, 부티크로 .. 文學,藝術/아트칼럼 2014.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