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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꿈꾸었던 자주적 문화국가와 우리 국악

바람아님 2018. 4. 28. 09:07
머니투데이 2018.04.28. 06:52

      

조선 4대 임금 세종은 1418년 음력 8월 10일 경복궁에서 즉위하여 올해는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세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우리문화의 근간을 제시하고 문화의 자주성을 일깨운 위대한 성군이었다. 훈민정음을 창제·반포하였으며 과학기술을 통한 창조경영을 실현하고 예악의 정비를 통해 유교적 이상정치를 실천하였다. 그러나 세종의 업적 중 유독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음악사적 업적인 듯 한데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음을 반영하는 것 같아 더욱 분발하게 된다.


성리학을 기초로 한 조선은 악(樂)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우주의 질서와 화합하게 하는 예악사상을 국가통치의 기본으로 삼아 중시하였다. 예(禮)의 본질은 구별로 외면적 질서를, 악(樂)의 본질은 조화로 내면적 질서를 의미하여 국가통치에 있어 법과 형벌 대신 예악을 통한 자율성과 선의 정치를 표방한 것이다. 예악사상에 기초한 의례악은 도덕 실천의 규범이었고 아악의 음악과 춤은 의례를 이끄는 절차의 주요한 요소였다. 세종조의 아악정비는 이러한 예악사상의 구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세종은 즉위 7년, 박연에게 음악을 총괄하는 악학별좌라는 관직을 제수한 후 국가의 근본인 예악정비를 위해 음악의 기준과 표준을 정비하고 악기, 악보, 악조, 춤, 연주복식을 연구하고 고문헌과 고악서에 의거하여 자주적인 조선의 제례악과 각종 연례악을 만드는 대대적인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는 세종 자신과 당대 최고의 지성, 예인, 과학자가 참여하였는데 총 9년간 예악의 정리와 완성을 위한 노력의 결실은 드디어 세종 15년인 1433년 정월, 왕과 신하의 정을 나누는 회례연 잔치에서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세종조 회례연은 술을 아홉 번 올리는 9작의 의례에 맞추어 각기 갈래가 다른 아악, 당악, 향악의 음악, 일무와 정재의 궁중무용, 등가 헌가 전상악의 세 가지 악대 편성, 4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연주단, 화려하고 다양한 복식을 모두 담아냄으로서 당대 문화의 역량이 집결되어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궁중연례의 전형을 보여준다.


세종의 예악정비 과정에서 인상깊은 점은 화려한 공연복식이나 대규모 연주단의 존재보다 옛 문헌과 기록에 의거하면서도 자주적인 조선의 음악을 구축하고자 했던 세종의 의지와 기나긴 정리와 완성의 시간들이다. 우리문화의 자주성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전통의 자부심과 세계 어느 나라보다 풍부한 전통음악의 자원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세계사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소상한 음악과 공연관련 기록들은 오늘과 미래 국악의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오늘 우리가 보존·전승하고 있는 국악은 다만 소리와 몸짓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과 문화, 내 것을 오롯이 지키고 만들고자 했던 자주적 생각, 그것을 백성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애민의 마음, 서로 정과 덕을 나누고 성숙하게 조화된 사회를 이루기를 희망했던 예악사상 등 우리의 오랜 생각, 마음, 철학이 함께 담겨있는 것이다.


국립국악원에서는 세종 즉위 600주년을 기념하여 당대 문화적 역량이 집결된 세종 15년의 회례연을 '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세종조 회례연'으로 창작하여 무대에 올린다. 이 공연을 통해 역사상 예와 악이 가장 조화로왔던 시대, 국가의 치세지음을 위해 노력하고 이를 창의적 역량으로 드러낸 세종의 공연예술사적 업적을 돌아보고 세종이 꿈꾸었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자주적 문화정신이 오늘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또한 세종의 자주적 문화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국민들이 오늘 우리 국악의 문화사적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고 성숙한 사회로 이끄는데 국악이 귀히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아본다. 마침 남북의 정상이 만났다. 600년전 자주적인 조선의 꿈을 꾸었던 성군의 희망과 음악도 무대에 오른다.

국립국악원 김희선 국악연구실장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