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3.19 손진석 국제부 기자)
- 손진석 국제부 기자
67명이 투자한 회사에 지분 15.7%를 가진 최대주주가 있다.
그런데 그가 밀어주는 사람만 대표이사를 독차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이 설립을 주도하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라는 국제기구를 둘러싼 논란은
이런 상황에서 출발했다.
아시아에는 이미 ADB(아시아개발은행)라는 개발 원조 기구가 있다.
AIIB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1966년 출범해 곧 반세기를 맞는 ADB는 역사가 말해주듯 덩치가 상당하다.
자본금이 1650억달러(약 186조원)에 달한다.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본부 직원은 3000명에 이른다.
하지만 현직을 포함해 역대 ADB 총재 9명은 예외 없이 일본인이 차지했다.
회원국이 67개국이나 되지만 강산이 변해도 총재의 국적(國籍)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물론 일본의 지분(15.7%)이 제일 크긴 하지만 형식적 관용이라도 보여주는
다른 국제기구들과 ADB는 분명 대조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럽의 전유물'이라는 비판을 듣지만 그래도 69년간 6개국 사람이 번갈아가며 수장(首長)을 맡았다.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는 세계은행 총재도 호주 출신(제임스 울펜슨)이 맡은 적이 있다.
김용 현 총재도 국적은 미국이지만 한국계 이민자다. ADB와 비슷한 기구를 보더라도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총재는
지분 20위 밖의 르완다 국적이고, 남미의 미주개발은행(IDB) 총재는 브라질·아르헨티나를 제치고 콜롬비아 사람이 맡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ADB 수장에 집착한 채 과욕을 부린다는 비판에 귀를 막아왔다.
그런데 세상일은 일본 뜻대로만 굴러가기 어렵다.
2010년 일본의 경제 규모를 추월한 중국은 ADB에서 목소리를 키우려 했다.
2년 전 구로다 하루히코 ADB 총재(현 일본은행 총재)가 물러날 때 중국은 총재 후보를 내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일본의 헤게모니를 뚫기 어렵자 후보 추천을 포기하고 AIIB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 경제 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주야장천 대장 노릇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까
중국이 아예 다른 놀이터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했다.
급기야 영국 같은 서구 국가마저 AIIB 참가를 선언하자 일본은 적잖게 초조해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 갑자기 ADB가 대출 여력을 40% 늘리겠다고 밝힌 것만 봐도 그렇다.
며칠 전에는 방일(訪日)한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에게 일본 기자들이 AIIB와 관련된 질문을 했다가
"(AIIB) 가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일본이 원하던 답이 아닐뿐더러 프랑스가 AIIB 합류 의사를 처음 밝힌 곳이 일본이 되어버렸다.
파비위스 장관은 "AIIB가 (성격이 비슷한) ADB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도 했다.
도쿄 한복판에서 중국이 들으면 반색할 이야기를 한 것이다.
AIIB를 둘러싼 세계 정세의 흐름 속에서 아집(我執)으로 일관하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새삼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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