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사랑의 판결 기준

바람아님 2015. 3. 30. 10:05

(출처-조선일보 2015.03.30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15세 여중생과 40대 유부남이 만났다. 아기까지 낳았다. 
어린 여학생은 '성폭력'이라며 우는데, 대법원은 '사랑'이라 한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한 여성 단체가 이 대법원 판결을 '성 평등 걸림돌'로 선정했다. 
사랑의 모습이 다양할 텐데 이렇게 판결한 사랑의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사랑' 하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미혼모의 길을 택한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유부남을 사랑한 그녀는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했다. 현모양처 교육을 강조하던 여학교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학교가 난리가 났다. 사춘기였던 우리도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불쌍하고 슬퍼 보였다. 
몇 년 전 사랑과 배신 때문에 자살한 후배의 얼굴도 떠오른다. 
이렇듯 사랑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을 핑계로 사랑 뒤에 숨는 사람들도 있다.

요즈음 늘어나는 데이트 성폭력 사건에서도 판결의 핵심은 사랑이 되어버린 것 같다. 
화간(和姦)이냐, 강간(强姦)이냐의 차이는 사랑의 유무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니 사랑의 모든 증거가 총출동한다. 몇 년 전 탤런트 P씨 사건에서도 그랬다. 
우리는 지금 사랑까지 수사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 학기부터 대학에서 결혼과 가족을 가르친다. 교육 내용 중에 사랑 이론이 있다. 
미국 코넬대 교수인 로버트 스텐버그가 주장한 '사랑의 삼각형 이론'이 사랑 이론의 고전이다. 
그에 따르면 헌신, 친밀감, 열정, 이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완전한 사랑이다.

[일사일언] 사랑의 판결 기준
법의 잣대에 사랑의 기준이 만들어진다면 스텐버그가 주장하는 완전한 사랑만 인정할 것인가. 
사랑하지는 않는데 좋아하기만 한다면. 그럼 삐뚤어진 사랑은? 
사랑의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고 설마 모든 사랑을 다 사랑이라고 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최소한 '사랑'이라면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엘리자베스 슈의 슬프고 애절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노트북'의 
남자 주인공 노아의 헌신적인 사랑까지는 포함되기를 기대해보고 싶은 것은 과도한 요구일까. 
대법원의 사랑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