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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감정을 훔치는 도둑

바람아님 2015. 3. 27. 11:37

(출처-조선일보 2015.03.27 박상원 배우·서울예대 교수)


	박상원 배우·서울예대 교수
박상원 배우·서울예대 교수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뮤지컬을 봤다. 
모든 출연 배우가 악기를 연주하며 공연하는 뮤지컬인데, 그중 분명 악기를 다룰 줄 몰랐던 
배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선 누구 하나 능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뛰어노는 배우들을 보며 그들이 흘렸을 땀과 노력이 연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란 직업은 참으로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한 인간의 능력을 갈고닦아 주는 직업이기도 하다. 
나는 배우가 되기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늘 "완전한 도둑이 돼라"고 말한다. 
정말 좋은 공연을 봤을 때 흔히 '죽인다'는 말을 쓰곤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연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고, 훔치는 것이다. 배우는 감정을 훔치는 도둑(emotion robber)이 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를 배우 버전으로 바꿔보면 
"(관객을) 죽이느냐 살리느냐 이것이 관건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

배우라면 무대에 오를 때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무대는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배우는 그런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의 절박함을 본능적으로 품어야 한다. 
배우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좋은 공연은 관객들에게 당장의 감동뿐 아니라 공연이 끝난 후 그들의 일상생활을 더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지난 주말 나 역시 고맙게도 동료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내 안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일사일언] 감정을 훔치는 도둑
집에 와보니 책상 위에는 올겨울 공연하게 될 묵직하고 두꺼운 대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늘 받는 것이지만 대본을 마주하면 언제나 무섭다. 
'이걸 다 외울 수 있을까,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연기 생활 30년이 넘었는데 갈수록 더 무섭고 두려워진다. 
하지만 올겨울에도 나는 연극적 상상 또는 창조적 망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치열한 고통이 따르는 오랜 연습을 통해 
시누이보다도 더 까다롭고 무서운 관객들의 마음을 훔쳐야 한다. 
그러니 여전히 무섭고! 두려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