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엄마와 봄볕 프로젝트

바람아님 2015. 3. 26. 12:29

(출처-조선일보 2015.03.26 공혜진 일러스트 작가)


	공혜진 일러스트 작가 사진
공혜진 
일러스트 작가
아침 먹는 시간이면 식탁 위로 해가 들어온다. 
하루 중 유일하게 집 안 깊게 해가 들어오는 시간이라 엄마와 아침을 먹은 뒤엔 바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앉아 햇볕을 쬔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같은 풍경으로 진행되니 평화롭기까지 한 시간. 
그 순간이 언제부턴가 각별하게 느껴졌다.

그때를 어떻게 기록할지 생각하다가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려 남기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이어오는 우리 프로젝트는 조간신문을 보다가 신문에서 끌리는 한 장의 사진을 골라 
그걸 그림으로 그리는 것. 함께 그림 그리는 그 순간도 좋고, 그리고 난 뒤 그 그림을 함께 보며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좋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싫증 나서 멈췄고 한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이제 봄이 왔고, 우린 아침 햇볕을 쬐다가 그 프로젝트를 다시 진행해보기로 했다. 
이번엔 함께 사는 고양이를 그리기로 했다. 평소 생활하면서 고양이가 재미있는 동작을 하면 무조건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나중에 그 사진들 중 하나를 골라 함께 그림을 그린다. 
같은 사진을 보며 같이 그리는데도 그림은 닮은 듯 다르다. 그래서 더 즐겁고 재미있다.


	공혜진 그림 사진
공혜진 그림
그림을 보면서 엄마의 시선이 되어보기도 하고, 
내가 그린 선들과 다른 것들을 발견하면서 모녀라도 다를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의 선을 만들어 내는데 세상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사람마다 다른 선을 만들어 내는 걸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게 바로 그림이 빚어내는 멋스러움 중 하나가 아닐까.

아침볕 아래 앉아 같은 방향을 보며 그림 그리는 시간을 갖는다. 
서로의 눈을 통해 그려진 다른 그림을 보는 과정은 엄마와 내게 따스한 봄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