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3.24 김현철 가수)
아는 사람 중에 치매 앓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분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어머니를 화장실에 모셔다 드리고 기다린 뒤
"엄마, 끝나셨어요?"하고 묻는 일이다.
그러곤 밥을 떠먹여 드리며 또 묻는다. "엄마, 다 씹으셨어요?"
처음엔 아기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모시는 게 너무 힘들어 싱크대 앞에서 물소리에 숨어 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어머니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기다려 주었겠구나.
걷기를 기다려주고 말하기를 기다려주고, 긴긴 시간 그랬겠구나.'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기다린다.
합격이나 임신 소식, 더욱이 남들에게 성공했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제발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기다리면서 안달하는 마음은 우리를 온통 헤집어놓는다. 화나고 원망도 들다가 그냥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어쩌면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누군가가 그리울 때 그 사람과 다시 만나는 날 어떻게 첫인사를 건넬까 생각하다 보면 그 기다림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다고. 뭐라고 첫인사를 건네는 게 좋을까.
"왜 이제 왔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하며 화를 낼 수도 있을 것 같고,
"반갑다! 지금이라도 와 줘서 다행스러워"하며 웃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초속 5㎝ 속도로 떨어지는 벚꽃의 그 찰나를 보기 위해 우리는 1년을 기다린다.
봄날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토록 기다렸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그 무엇도 좀 더 멋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려고 단장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 계절이 그렇듯 말이다.
벚꽃이 춤추듯 흩날릴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엄마, 끝나셨어요?" 하고 묻고 있을 그 사람을 떠올린다.
두 사람이 말간 얼굴로 마주 서서 주고받을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아마도 그렁그렁한 눈을 애써 감추며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기다려주어 고맙다. 참으로 고맙다…."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사일언] 감정을 훔치는 도둑 (0) | 2015.03.27 |
---|---|
[일사일언] 엄마와 봄볕 프로젝트 (0) | 2015.03.26 |
[삶의 향기] 함께 가야 할 사람들 (0) | 2015.03.24 |
[일사일언]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엄마, 내 말 듣고 있어?" (0) | 2015.03.23 |
[일사일언] 1만 시간의 노력 (0) | 2015.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