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경제포커스] 우리가 長期 저성장을 견딜 수 있을까

바람아님 2015. 5. 20. 10:57

(출처-조선일보 2015.05.20 김홍수 경제부 차장)



	김홍수 경제부 차장 사진
"일이 잘못돼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능력보다 연줄이 앞서고, 법치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아들아, 이곳은 너의 꿈을 펼치기에 적합한 나라가 아니다. 조국을 떠나라."


6년 전 이탈리아의 명문 루이스대학 첼리 총장은 

심한 나라 꼴을 보다 못해 이런 글을 최대 일간지에 기고했다. 

최고 지성이 던진 도발적인 문제 제기는 파장이 컸다. 

인터넷 토론 공간마다 댓글이 수천개씩 붙었다. 

급기야 대통령이 나서 "청년들아, 조국을 떠나지 마라. 이탈리아는 다시 성장할 수 있다"는 호소문을 내야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기자는 첼리 총장을 로마에서 만났다. 

그는 "유감스럽지만 바뀐 게 하나도 없다.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가 전혀 없다.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지 않고 오히려 물을 흐려 시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고 한탄했다.


오래전 취재 장면을 다시 꺼낸 이유는 요즘 우리나라 꼴이 꼭 그 모양인 듯해서다. '

이탈리아'를 '한국'으로 바꾸면 바로 우리 얘기지 않은가. 

첼리 총장은 이탈리아가 그래도 파산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에 대해 

"고도성장기에 자산을 축적한 부모 세대가 자식들을 그럭저럭 건사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부모 세대가 자식들을 책임질 만큼 부(富)를 축적하고 있나.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드러난 국민연금 문제는 기성세대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태라는 걸 여실히 드러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느냐 마느냐, 그 부담을 누가 하느냐를 놓고 '세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올 들어 세 번이나 낮춰 3.1%로 조정했다. 

"수출 부진, 소비·투자 심리 위축으로 성장 동력이 약화됐다"고 그 이유를 댔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엊그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거주 청년들의 실질실업률은 30%가 넘는다. 

청년실업률이 높다는 이탈리아·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을 비웃을 처지가 못 된다. 

국민소득이 가계보다 기업으로 더 흘러들어간다는 비판이 많지만 

현재 상장기업 3곳 중 1곳은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못 갚는 상황이다. 

한동안 한국 경제가 잘나간다는 착시 효과를 주었던 삼성전자와 현대차마저 성장 모멘텀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가계는 1000조원의 부채에 짓눌려 소비의 성장 엔진이 못 되고 있다.


일본은 20년 장기 불황을 벌어놓은 자산으로 버텨냈지만 우리는 곳간에 쌓아놓은 자산도 없다. 

소득 대비 순저축액을 보면 50대의 경우 일본은 131%인데 한국은 8%, 

60대 이상은 일본은 418%지만 한국은 27%에 불과하다.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를 건사하기는커녕 자신의 노후를 스스로 책임지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누구나 위기감을 느끼고 환골탈태의 해법을 고민해야 할 텐데 

매사에 국론이 양분돼 개혁 불능 국가로 전락했다.


최근 만난 한 원로 금융인은 

"이대로 가면 우리도 일본형 장기 불황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바닥까지 떨어진 다음에야 머리를 맞대고 돌파구를 고민하게 될 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우리에게 그런 시행착오를 감당할 여유가 있을까.' 

몇 년 뒤 "아들아, 조국을 떠나라'는 글을 써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