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2016-6-16
사랑을 주제로 한 비극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연극이 떠오르시나요? 열에 아홉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대답할 것입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이 금단의 열매입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어린 연인은 목숨을 겁니다. 하지만 강렬한 사랑의 힘도 '원수지간'이라는 악연을 끝내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몬테규와 캐플릿 가문은 어쩌다 그렇게 지독한 원한을 품게 됐을까요? 작가 셰익스피어는 그와 관련해 어떤 설명도, 단서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그 근본적 원인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추정해봅니다. 아마도 다툼의 계기가 너무나 사소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거대한 악업을 쌓아올린 기초라고 부르기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을 것이리라. 원한은 눈덩이와 같아서 시작될 때의 눈뭉치 크기는 의미가 없기 마련이니까.
어이없게도 이태리의 유라시아 대륙 맞은 편 끝 중국에 이런 '로미오와 줄리엣'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옛 일도, 지어낸 이야기도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규모도 더 큽니다. 가문대 가문이 아니라 마을 대 마을입니다. 광저우 정청 신탕진에서 한참 들어가는 시골 지역에 길을 경계로 두 마을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시저우촌과 샤부촌입니다. 워낙 붙어있는 마을이다 보니 왕래가 빈번합니다. 학교 동창생도 수두룩합니다. 그러니 서로 상대편 마을에 친구도 적지 않습니다. 함께 동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마을 간에 결혼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1백 년도 전부터 그러했다고 합니다. 아직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시절 두 마을은 큰 싸움을 벌였습니다. 무기가 동원됐을 만큼 격렬한 싸움이었다고 합니다. 두 마을 대표가 만나 하늘에 맹세했습니다. "앞으로 너희 마을 사람과는 절대 결혼의 연을 맺지 않겠다." 그렇게 악연이 시작됐고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쏟아내게 됐습니다.
둘은 중학교 동창이었습니다. 1학년 때 한 반에서 짝을 한 뒤 친해졌습니다. 항상 함께 등하교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어울려 공부했습니다. 같이 있으면 즐겁던 감정은 이내 사랑으로 발전했습니다. 2007년 쉬텐은 중신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연인이 됐습니다. 둘은 모두 대학에 가는 대신 직업을 택했습니다.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한 번도 서로 부부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이들 연인에게 잔인한 장난을 겁니다.
하루는 쉬텐의 부모가 이들이 같이 가는 모습을 보고 아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느 마을의 처녀니?" 쉬씨는 길 건너편 샤부촌 출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쉬씨 부모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그 처자와 절대 결혼할 수 없다. 그러니 이쯤 헤어져라."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쉬씨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습니다. 원래 샤부촌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황당한 대답만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마을 어른들까지 찾아와 회유와 협박을 했습니다. "조상님들의 원한이 사무쳐 있다. 네가 그 계율을 깨버린다면 조상님들의 저주를 살 것이다. 우리들은 너를 우리 마을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다. 너희 부모 역시 쫓겨날 것이다." 쉬씨가 아무리 설득하려 해도 마을 어른 가운데 단 한 명도 들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길 건너 샤부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신 역시 부모와 마을 사람들로부터 갖은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연인은 그래서 지난해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서로를 잊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다시 만났습니다. 쉬 씨는 현지 기자에게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습니다.
"왜 우리 조상들이 서로 원한을 갖게 됐는지 모르지만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도저히 헤어질 수 없습니다. 도끼로 우리 사이를 쪼개도 이제는 떨어지지 않으렵니다."
중 씨의 말입니다.
"마을 노인들 가운데는 그 결혼 금지 맹세를 마치 신앙처럼 여기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마을 어른 가운데 누가 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리면 맹세를 들먹입니다. '누군가 마을 사이의 맹세를 어기고 몰래 부정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 두 마을의 남녀가 서로 결혼하겠다면 사생결단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죠."
쉬 씨는 눈물을 지으며 한탄합니다.
"그 맹세 탓에 두 마을 출신 연인이 제가 아는 것만 해도 10쌍 넘게 헤어져야 했습니다. 몰래 결혼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멀리 다른 고장으로 간 뒤 고향 마을에는 발길을 끊어야 했습니다. 절연한 셈이죠. 우리도 그래야 하나 고민입니다."
참 어이없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횡행하는 숱한 원한과 피의 복수가 다 비슷합니다. 애초 틀어지게 된 계기가 지금의 비극을 불러야 했을 만큼 무거웠을까요? 현재 서로 쏟아붓고 있는 증오의 크기를 처음 시작될 당시와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하잘 것 없습니다. 따져볼 여지조차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원한과 증오를 소중한 보물처럼 간직하고 살뜰히 키워갑니다. 인간이 본원적으로 원한을 즐기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우상욱 기자woosu@sbs.co.kr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몬테규와 캐플릿 가문은 어쩌다 그렇게 지독한 원한을 품게 됐을까요? 작가 셰익스피어는 그와 관련해 어떤 설명도, 단서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그 근본적 원인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어이없게도 이태리의 유라시아 대륙 맞은 편 끝 중국에 이런 '로미오와 줄리엣'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옛 일도, 지어낸 이야기도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규모도 더 큽니다. 가문대 가문이 아니라 마을 대 마을입니다. 광저우 정청 신탕진에서 한참 들어가는 시골 지역에 길을 경계로 두 마을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시저우촌과 샤부촌입니다. 워낙 붙어있는 마을이다 보니 왕래가 빈번합니다. 학교 동창생도 수두룩합니다. 그러니 서로 상대편 마을에 친구도 적지 않습니다. 함께 동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마을 간에 결혼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1백 년도 전부터 그러했다고 합니다. 아직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시절 두 마을은 큰 싸움을 벌였습니다. 무기가 동원됐을 만큼 격렬한 싸움이었다고 합니다. 두 마을 대표가 만나 하늘에 맹세했습니다. "앞으로 너희 마을 사람과는 절대 결혼의 연을 맺지 않겠다." 그렇게 악연이 시작됐고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쏟아내게 됐습니다.
↑ [월드리포트] 우상
시저우촌은 중 씨와 류 씨, 천 씨, 쉬 씨 4개 성 씨가 이룬 집성촌입니다. 그 가운데 쉬 씨가 가장 많습니다. 샤부촌은 90% 이상이 중 씨입니다. 시저우촌의 청년 쉬텐, 샤부촌의 처녀 중신이 현재 사랑의 비극을 쓰는 주인공들입니다.
둘은 중학교 동창이었습니다. 1학년 때 한 반에서 짝을 한 뒤 친해졌습니다. 항상 함께 등하교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어울려 공부했습니다. 같이 있으면 즐겁던 감정은 이내 사랑으로 발전했습니다. 2007년 쉬텐은 중신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연인이 됐습니다. 둘은 모두 대학에 가는 대신 직업을 택했습니다.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한 번도 서로 부부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이들 연인에게 잔인한 장난을 겁니다.
하루는 쉬텐의 부모가 이들이 같이 가는 모습을 보고 아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느 마을의 처녀니?" 쉬씨는 길 건너편 샤부촌 출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쉬씨 부모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그 처자와 절대 결혼할 수 없다. 그러니 이쯤 헤어져라."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쉬씨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습니다. 원래 샤부촌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황당한 대답만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마을 어른들까지 찾아와 회유와 협박을 했습니다. "조상님들의 원한이 사무쳐 있다. 네가 그 계율을 깨버린다면 조상님들의 저주를 살 것이다. 우리들은 너를 우리 마을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다. 너희 부모 역시 쫓겨날 것이다." 쉬씨가 아무리 설득하려 해도 마을 어른 가운데 단 한 명도 들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길 건너 샤부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신 역시 부모와 마을 사람들로부터 갖은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연인은 그래서 지난해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서로를 잊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다시 만났습니다. 쉬 씨는 현지 기자에게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습니다.
"왜 우리 조상들이 서로 원한을 갖게 됐는지 모르지만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도저히 헤어질 수 없습니다. 도끼로 우리 사이를 쪼개도 이제는 떨어지지 않으렵니다."
↑ [월드리포트] 우상
시저우촌 처녀 쉬리와 샤부촌 청년 중장도 마찬가지 처지입니다. 둘도 역시 학교에서 만나 사랑의 감정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혼기가 차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두 마을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어이없는 비밀이 드러났습니다. 둘도 역시 강력한 반대에 시달리다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끝내 다시 만나기 시작했고 3년째 몰래 하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중 씨의 말입니다.
"마을 노인들 가운데는 그 결혼 금지 맹세를 마치 신앙처럼 여기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마을 어른 가운데 누가 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리면 맹세를 들먹입니다. '누군가 마을 사이의 맹세를 어기고 몰래 부정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 두 마을의 남녀가 서로 결혼하겠다면 사생결단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죠."
쉬 씨는 눈물을 지으며 한탄합니다.
"그 맹세 탓에 두 마을 출신 연인이 제가 아는 것만 해도 10쌍 넘게 헤어져야 했습니다. 몰래 결혼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멀리 다른 고장으로 간 뒤 고향 마을에는 발길을 끊어야 했습니다. 절연한 셈이죠. 우리도 그래야 하나 고민입니다."
현지 기자들이 취재에 나섰습니다. 도대체 100여 년 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비극이 시작됐을까? 올해 90이 넘은 노인 한 분만이 직접 당시의 일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기억이 오락가락 합니다. 정확한 설명을 해주지 못합니다. 결국 많은 연인들을 눈물짓게 하는 비극적 맹세의 시작은 아무도 모르는 셈입니다. 그래도 완고하게 원한을 지켜나갑니다. 그저 '닥증', '닥치고 증오해'입니다.
참 어이없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횡행하는 숱한 원한과 피의 복수가 다 비슷합니다. 애초 틀어지게 된 계기가 지금의 비극을 불러야 했을 만큼 무거웠을까요? 현재 서로 쏟아붓고 있는 증오의 크기를 처음 시작될 당시와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하잘 것 없습니다. 따져볼 여지조차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원한과 증오를 소중한 보물처럼 간직하고 살뜰히 키워갑니다. 인간이 본원적으로 원한을 즐기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우상욱 기자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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