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Weekly BIZ] 어느 날 그리스가 사라진다? 슬프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바람아님 2015. 6. 21. 09:25

(출처-조선일보 2015.06.19 레오니드 버시스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디폴트→유로존 탈퇴' 시나리오
오래전부터 예견됐고 대비해와

영국 작가 데이비드 미첼의 소설 '넘버 나인 드림(Number 9 Dream)'에서는 벨기에가 어느 날 세계 지도에서 지워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진다.

우리도 그리스를 우리의 머릿속에서 없애버리면 어떻게 될까?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면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그리스에 대한 뉴스를 찾아볼 수 없고, 트위터에 그리스에 대한 소식이 
올라오지 않으며, 유럽연합 자료나 유로스타트(Eurostat) 리포트에서조차 그리스가 언급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디폴트→유로존 탈퇴' 시나리오
야니스 스투르나라스 그리스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채권단과 협상이 결렬된 것은 디폴트, 그리고 이후 유로존 탈퇴를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그 경우 그리스는 '아마도' 유럽연합에서도 탈퇴하게 될 것이다.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스투르나라스 총재는 
덧붙였다. 그러나 사실 이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예견된 상황이다. 
스투르나라스의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막상 닥쳐도 누구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는 주지 않을 것이다.

S&P다우존스의 팀 에드워드 시니어 디렉터는 최근 "그리스의 주식, 그리스의 채권,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이 만약 모두 
사라진다면 이는 비극이기는 하겠지만, 세기적인 사건도 아니고, 세계경제에 치명적인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리스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190억유로(약 210억달러) 정도인데, 이는 유럽연합 주식시장의 0.2%를 차지한다. 
그리스의 GDP는 유럽연합 전체의 1.5% 수준이다. 
그리스의 수출입 규모는 유럽연합 전체 수출입 중 1%를 조금 웃도는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그리스는 어마어마한 부채를 안고 있다. 
총 3240억유로 규모의 빚을 졌다. 하지만 이 빚은 대부분 유통되지 않고, 금융시장과 크게 관련이 없다.

그리스는 대부분 유럽 정부로부터 돈을 빌렸다. 
만약 그리스가 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디폴트를 선언한다면 물론 정치적 파문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때문에 파산하는 유럽 국가가 나오진 않을 것이다. 
10년 동안 지연된 그리스의 이자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정부 예산안을 짜는 데 문제가 발생하는 유럽 국가 역시 없을 것이다. 
또 유럽재정안정기금에도 큰 무리가 가진 않는다. 그리스가 빌린 돈의 원금은 단순히 매몰 비용(sunk cost·일단 지출하고 
나서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회수할 수 없는 돈)으로 처리하면 된다. 
유럽연합은 지금까지도 그리스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해 왔고, 막상 그리스가 파산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민간 채권자들 역시 그리스의 디폴트라는 리스크에 대해 상당 기간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파산할 리가 없다.

만약 유럽연합 멤버로서 그리스가 빚을 안은 채 어느 날 사라지고, 헬라스(고대 그리스의 이름)로 재탄생한다면 
이는 마치 소련(Soviet Union)이 붕괴하면서 새로운 나라들이 생겨날 때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러시아가 채무를 떠안았기 때문에 당시 태어난 신생국들은 빚이 없는 깨끗한 상태였다. 
물론 많은 러시아인이 제국이 망했다는 콤플렉스를 안게 됐고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등 정신적 충격은 있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1990년대 초반 러시아보다 이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은 러시아보다 경제적으로 강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많이 알고 있다. 오히려 그리스를 쫓아내면서 
유럽연합은 어느 정도 새 멤버들에게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 역시 힘든 여정을 차라리 혼자 걸어가는 게 낫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재앙적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채권단의 요구 사항들은 그리스의 경제가 회복하는 데 
좋은 촉매제가 됐다. 부뤼겔 싱크탱크의 졸트 다바스 연구원은 "그리스의 노동시장은 이제 독일 시장보다 유연해졌고, 
단위 노동 비용에 대한 조정 등이 이뤄지면서 그리스의 경쟁력은 향상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리스 경제에서는 시장성이 높은 섹터인 농업, 제조업, 교통업, 관광업 등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시장성이 낮은 건설업과 금융업이 그동안 그리스의 경제에 짐이 되어왔다.

디폴트를 선언한 뒤 헬라스가 된 그리스는 모든 문제를 통화 절하와 은행 국유화를 통해 해결하려 할 것이다. 
아이슬란드가 그랬던 것처럼 IMF 등 모두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디폴트 후 그리스(헬라스)는 더 이상 다른 국가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울 것이지만, 자국 내에서 해결하면 된다. 
그리스 정부는 좋든 싫든 앞으로 금전적 책임감을 키워야 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금전적으로 도와줄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유로화와 유럽연합에 속해 있지 않은 유럽 국가도 많지만, 충분히 잘살고 있다. 
그리스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부채의 짐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유럽연합을 떠나는 리스크는 감수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