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6-29
지금 중국과 경제적으로 가장 친한 나라는 최강 미국도, 이웃 기술 강국 일본도 아닌 독일이다. 지난 2년 사이 양국 정상은 네 차례나 서로 오가며 친밀함을 과시했다. 이슈는 하나, ‘혁신 협력’이다. 제조업 강국을 향한 ‘중국 제조 2025’는 그 결과물이다. 올 3월 하노버 세빗(Cebit) 개막 연설에 나선 리커창 중국 총리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중국 제조 2025’는 같은 콘셉트”라고 말해 ‘인더스트리 4.0’(2013년 등장)이 ‘제조 2025’의 원조임을 털어놨다.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서는 지금 ‘중국·독일 중장비 혁신 시험공단’이 건설 중이기도 하다. 이 공단은 ‘중국제조 2025, 독일 인더스트리 4.0 공단’으로도 불린다. 중국은 그렇게 독일과 스크럼을 짜고 제조 혁신에 나선다.
중국의 ‘탈(脫)아시아’ 움직임이 엿보인다. 지난 30여 년 중국의 산업 협력 파트너는 일본·한국·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였다. 이들 나라에서 생산된 부품을 중국에서 조립해 미국·유럽에 파는 분업 구조다. 그러나 기술 수준이 높아진 중국 기업이 부품을 국내에서 조달하면서 이 구조는 깨지고 있는 중이다. 생산 대국 중국과 기술 강국 독일이 손을 잡는다면 이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게 분명하다. 중국과 주변 아시아 기업은 협력·분업이 아닌 경쟁 대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경쟁에서 뒤진 기업은 시장에서 보따리를 싸야 한다.
우리 기업과 직결된 문제다.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에 공장을 두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는 2010년까지만 해도 중국 굴착기 시장의 약 15%를 차지하는 최강자였다. 그해에 2만 대 이상을 팔았다. 그러나 현재 시장 점유율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로컬(중국) 기업의 약진 때문이다. 특히 건설장비 분야 대표 기업인 싼이(三一)중공업에 밀렸다. 2010년 6.6%였던 이 회사 시장 점유율은 지금 약 17%에 달했다. 역전이다.
싼이가 기술을 들여오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이 회사는 2012년 독일 유명 중장비 회사인 푸츠마이스터 인수를 계기로 기술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쾰른에 R&D센터와 교육센터도 세웠다. 두산 관계자는 “기술면에서도 싼이는 이미 한국 제품을 따라잡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중국 기업이 기술로 무장하면 우리 기업은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야 했다. 가전에 이어 철강이 그랬고 화학 제품이 그렇고, 심지어 우리가 경쟁력을 갖췄다는 자동차·스마트폰도 장담할 수 없다. 중·독 혁신제휴가 부담스러운 이유다.
세계는 지금 제조혁신 전쟁 중이다. 슬로건은 다르지만 미국도, 프랑스도, 일본도 모두 스마트 제조 환경 구축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제조혁신 3 .0’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우리의 혁신 목표는 대부분 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17년에 맞춰져 있다. 다음 대통령 때는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혁신에서 기술 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게 상업화다. 규제는 상업화의 독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규제 철폐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그래서야 어찌 독일과 손잡고 내달리는 중국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한때 우리는 중국을 ‘세계 하청 공장’이라고 깔봤다. ‘대한민국은 그 하청 공장을 돌리는 R&D센터’라며 호기도 부렸다. 그러나 기술 개발에서 뒤처지고 시장 혁신에서 멀어진다면 우리가 거꾸로 중국의 하청 공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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