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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한시] 황산과 함께 짓다

바람아님 2013. 4. 3. 22:20

[가슴으로 읽는 한시] 황산과 함께 짓다

 

    황산과 함께 짓다

     

    꽃피는 철에 술을 보면 탄식이 절로 나니
    돈으로도 술로도 세월은 잡지 못하네.
    부끄러워라! 나는 주린 배나 채우는 보리밥인데
    그대는 세상에 드문 창포꽃 같은 사람.
    차 달이는 곳에는 파리와 모기가 적은 법
    대추나무 시집보내는 집에는 벌과 나비떼 몰려들리라.
    석류꽃이 눈에 가득 불꽃처럼 피는 때에
    문 앞에는 삐걱삐걱 시인의 수레 도착했네.

    次黃山韻(차황산운)

    芳辰對酒每咨嗟(방신대주매자차)
    難把酒錢歲月覗(난파주전세월사)
    愧我塡腸同麥飯(괴아전장동맥반)
    如君稀世是菖花(여군희세시창화)
    蠅蚊應少拈茶處(승문응소염다처)
    蜂蝶爭喧嫁棗家(봉접쟁훤가조가)
    滿眼石榴開似火(만안석류개사화)
    門前轢轢到詩車(문전역력도시차)

     

    ―김정희(金正喜·1786~1856)

    추사(秋史) 김정희의 시다. 어느 봄날 절친한 친구였던 황산(黃山) 김유근이 집으로 찾아오자 그와 함께 시를

    지었다. 꽃이 있고 술이 있어도 뜻이 맞는 친구가 없다면 쓸쓸함은 더해진다. 자신은 주린 배를 채우는 보리밥,

    친구는 세상에 드문 창포꽃이라 하다니 추사처럼 도도한 사람도 친구가 그리울 때는 작아진다. 화려한 곳으로

    남들이 몰려갈 때 고고하게 차를 달이는 나를 찾는 친구이니 오죽하랴! 불타는 듯한 석류꽃에 마음이

    외로워질 때 벌써 문밖에는 시인을 태운 수레가 도착했다. 그도 분명 나처럼 외로웠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