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8.10 남무성 재즈평론가)
입맛 없는 여름이라 그런지 요즘 들어 횟집 만남이 잦다.
생선회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썩 내키지는 않지만 다들 좋아라 하니 도리가 없다.
회에 대한 웃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또래 친구들끼리 큰맘 먹고 횟집으로 갔다.
비싼 음식을 당당히 먹어줘야 어른 흉내를 좀 낸다 싶었던 때다.
그런데 메뉴판에 적응이 안 됐다.
광어로 먹을까, 우럭을 먹을까 눈치를 보던 중에 한 녀석이
"야, 이 집은 활어 전문이라고 쓰여 있잖아. 활어회로 주세요."라고 외쳤다.
입구에 큼직하게 붙어 있던 글자를 떠올렸던 게다.
며칠 전 동네 선배가 횟집에서 연락을 해왔다.
매운탕이나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갔더니 붉은 빛깔을 띤 회 한 접시가 발가벗고 누워 있다.
기껏해야 네 평쯤 되어 보이는 식당은 흔한 수조(水槽) 하나 없어 일반 분식집 같았다.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겠기에 한 점 집었는데 어쩐 일인지 맛이 달았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식감에 깊은맛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회냐고 물었더니 도미 선어란다. 도와 미라니, 이름부터가 장 3도 간격의 온음 두 개다.
선배 왈, 도미라서가 아니라 진짜 맛있는 회는 활어가 아니라 선어회란다.
바로 잡아 내놓는 게 아니라 저온 숙성시켜 먹는 걸 말한다.
팔딱대는 물고기를 눈앞에서 뜰채로 건져내야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일본인들도 활어보다 선어회를 선호한다고 한다.
선어는 보통 스시(초밥)의 재료로 쓰이는데 그러고 보니 음악에서도 사시미를 노래한 건 못 들어봤어도 스시를 예찬한 건
제법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의 '스시'도 명곡이다.
지켜보던 식당 주인이 철 지난 개그로 끼어든다.
"세상엔 못된 견이 두 마리 있어요. 하나는 선입견이요 하나는 편견이지요.
그걸 다 물리칠 수 있는 견이 바로 백문이 불여일견이고요."
선어회 식당을 하면서 답답한 일이 많다며 푸념을 섞는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처음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얼핏 선입견을 갖게 될 때가 많다.
서로 좀 알게 되었을 때 자리가 편하다.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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