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5.08.24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중국이 9월 3일 열리는 전승절(戰勝節)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지난 3월쯤이었다.
이후 중국은 한국에 대해 전례없이 곰살맞게 굴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한국을 휩쓰는데도 중국은 '한국 여행 주의보'를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에 들어온 한국인 메르스 환자를 치료해 돌려보냈다.
병원비 14억여원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중국에 연수하러 온 한국 공무원 10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사망한 외국인 유해를 본국으로 옮기려면 절차가 복잡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루 만에 한국인 유해를 비행기로 이송하는 데 동의했다.
상하이와 충칭 등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 유적지는 금싸라기 땅으로 변한 경우가 많다.
상하이와 충칭 등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 유적지는 금싸라기 땅으로 변한 경우가 많다.
지방정부 입장에선 재개발하는 게 훨씬 남는 장사다. 그런데 중국 중앙정부는 임정 유적을 허물기는커녕 재단장을 결정했다.
대신 관영 환구시보는 박 대통령이 중국에 와야 하는 이유로 '임정'을 거론했다.
"중국은 임정에 은닉처를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임정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을 겨냥한 초청 메시지였다.
한국은 임정의 법통(法統)을 잇고 있지만 북한은 임정을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요즘 한·중 관계는 '밀월(蜜月)' 분위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요즘 한·중 관계는 '밀월(蜜月)' 분위기다.
그러나 중국은 전승절 50여일 뒤에 6·25 전쟁 참전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드라마를 방영할 계획이다.
오는 10월 25일 중공군의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을 막기 위해 북한을 지원) 전쟁' 참전 65주년을 맞아 '삼팔선'이란 제목의
36부작 드라마 촬영을 끝낸 상태다.
미군의 북·중 접경 지역 폭격으로 친구를 잃은 중국 청년이 중공군(인민지원군)에 자원입대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시작한다.
미국의 중국 침략을 막기 위해 6·25 전쟁에 개입했고, 결국 승리했다는 중국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줄거리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부주석 시절이던 2010년 10월 6·25 전쟁 참전 60주년 때 "(항미원조는)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했었다.
오는 10월 10일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중국이 고위급 인사를 파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은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은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지금 중국의 대외 전략은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의 패권국 지위를 굳히면서 미국과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은 이번 행사의 키워드인 '항일'을 부각하기 위해 꼭 필요했다.
그러나 '항미' 드라마를 만든 걸 보면 미국 견제용으로 '북한 카드'가 아직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최근 북한의 대남 도발에 대해서도 중국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쌍방이 모두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
국은 역사·우의(友誼)·형제 등 명분을 중시하는 말을 내세우지만 철저하게 실리를 좇는다. 중국은 항미·항일·남한·북한을
구분해야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반면 우리는 북·미·중·일을 복잡하게 섞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으로 '한·중이 너무 가까워졌다'고 우려할 것도 없고, 50일 뒤 드라마 '삼팔선'을 보고
박 대통령의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으로 '한·중이 너무 가까워졌다'고 우려할 것도 없고, 50일 뒤 드라마 '삼팔선'을 보고
"중국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분개할 것도 없다.
덩샤오핑의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지금 필요한 건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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