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봉, <성균관 풍경>(1959)
다산 정약용(1762~1837)은 강진에서 17년여를 살았다. 그 중 읍내에서 7년, 다산초당에서 10년을
살았다. 처음엔 반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직 동문 밖 주막집 할머니만 그를 따뜻하게 대했다.
다산은 그 주막집에서 4년 동안 얹혀살았다. 춥고 쓸쓸했지만 할머니의 정을 듬뿍 느낀 세월이었다.
어느 날 저녁 그 할머니가 다산에게 물었다.
"왜 부모의 은혜는 같은데, 아버지를 더 중하게 여깁니까? 아버지의 성을 따를뿐더러, 아버지의 친족은
우대하면서 어머니 친족은 왜 가볍게 여깁니까? 장례 상복도 아버지 때보다 어머니 때가 격이 낮은
이유가 뭔가요?"
다산이 대답했다.
"아버지의 은혜는 만물을 처음 있게 한 것과 같으니 그런 게지요."
그러자 다시 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씨앗이요, 어머니는 땅입니다. 씨앗을 땅에 뿌리는 일은 작지만,
땅이 씨앗을 길러내는 일은 매우 큰 것입니다. 하지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처럼,
유類가 나누어지는 것은 모두 씨앗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니, 아마도 그래서 성인이 이를 중히 여긴 것
아닌가 합니다."
다산은 할머니의 말을 듣고 크게 무릎을 치며 깨달았다. 일개 밥 파는 노파가 천지간의 미묘한 이치를
어찌 알았을까? 다산은 자신도 모르게 그 일자무식한 할머니가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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