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5.11.05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서 "남중국해 航行자유 보장돼야"
美·中 충돌… 공동선언 무산
美 "행동수칙 넣자" 압박
中 "1對1로 풀자" 거부하며 남중국해 문구 자체도 반대
정부 '남중국해 중립' 태도… "최근 코너에 몰려" 분석도
미·중 갈등의 핵심인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한 '선택의 순간'에 한국은 중국이 보는 앞에서 미국의 편에 섰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3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 미·중이 정면 충돌한 공동 선언문과 관련, '남중국해에서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한국의 '선택'을 요구한 이후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가 미·중 앞에서 남중국해 문제 입장 표명을 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회의는 중국이 공동 선언문 문구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파행으로 끝났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이날 "한 장관이 미국·일본·호주·필리핀 등과 함께 남중국해에서 항행·비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분쟁이 일어났을 때 무력이나 위협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행동수칙(COC)을 공동 선언문에 반영하자는 데 미국 측과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ADMM-Plus 본회의에서도 남중국해에서의 항행·비행의 자유를 강조하며 "관련 당사국 간 체결한 행동선언(DOC)의 효과적이고 완전한 이행과 함께 행동수칙의 조기 체결 노력에 실질적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분쟁은 관련 합의와 국제적으로 확립된 규범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은 자제돼야 한다"고 했다.
이날 한 장관의 연설은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 국가 외에 미·중·일 국방장관들도 지켜봤다. 한 외교 소식통은 "연설 자체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 제3국이 관여하는 것을 꺼리는 중국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며 "결국 미국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한 장관의 연설이 끝난 뒤 열린 한·중 국방장관 회담에서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선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 장관은 밝혔다.
이날 회의에선 당초 18개국 국방장관들이 남중국해 문제를 논의한 뒤 점심때 공동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전날부터 고위급 실무 접촉을 통해 문구도 조율했다. 하지만 참가국들은 끝내 공동 선언을 내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인공섬을 둘러싸고 격하게 부딪쳤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는 아세안 10개국과 한·미·중·일 등 8개국이 참석했다. 회의 시작 전부터 참가국들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합의점을 찾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현재 필리핀·베트남·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4개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 4개국과 미국·일본·호주 등은 이날 "항행·비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분쟁이 일어났을 때 무력이나 위협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행동수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내용을 공동 선언에도 반영하자고 했다. 중국을 에워싸고 '1 대(對) 다수'로 압박하는 구도였다. 한 장관도 여기에 동참한 셈이다.
중국은 이를 거부했다. 남중국해에서 진행 중인 영토 분쟁은 "해당국과 중국이 1대1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공동 선언에 '남중국해'라는 말 자체가 들어가선 안 된다"고 버텼다. 이날 오후 중국 국방부는 "공동 선언이 무산된 책임은 이 지역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참여한 특정 국가에 있다"는 입장을 냈다. 미국을 겨냥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회의가 결렬된 뒤 미 국방부는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이 5일 핵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타고 남중국해 인근을 항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분쟁 중인 말레이시아의 히삼무딘 후세인 국방장관도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 우리 정부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대단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 왔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입장 표명을 자제했고, 입장을 밝히더라도 중립적 태도를 유지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 편을 들기가 외교적으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한
장관의 언행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 변화를 반영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한 장관이 한·미 군사동맹을 누구보다 중시해야 하는 국방장관임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카터 미 국방장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잇단 남중국해 관련 언급에 정부의 '전략적 중립' 기조가 코너에 몰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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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중국 앞에서 분명히 밝힌 한국의 '남중국해' 입장연합뉴스 2015-11-5
남중국해는 우리 수출물동량의 30%, 수입에너지의 90%가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 교통로이다. 주권문제라는 명분으로 중국이 남중국해 지역의 일방적 형상변경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고 국제사회의 우려도 크다. 한 장관이 밝힌 항행자유 보장 요구는 한미동맹 차원의 미국 편들기라는 시각을 넘어서 남중국해에 긴요한 이해관계를 가진 우리로서는 당연한 입장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 당사국 간에 이미 체결한 '남중국해 분쟁당사국 행동선언(DOC)'의 효과적이고 완전한 이행, 남중국해 분쟁당사국 행동수칙(COC)'의 조기 체결 촉구도 분쟁의 평화적 해결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미국과 중국 간의 남중국해 충돌은 한국에 새로운 도전이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이 지금보다 높아질 것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장관의 연설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이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공개적 요구와, 이달 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한 이후 이뤄졌다. 지금까지 우리의 기본입장과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자칫 한국이 어쩔 수 없이 입장을 밝힌 것 아니냐는 인상을 외부로 줄 수 있다. 그동안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할수록 한미동맹과 한중 우호관계를 동시에 유지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사안의 본질과 우리 국익을 중심으로 정책을 선제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외교적 공간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라고 피하거나 눈치를 보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압박받는 단초가 될 뿐이다. '전승절 행사' 참석 문제가 그랬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도 그런 식으로 전개돼 왔다.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미국과 '굴기'를 꿈꾸면서 밖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 간의 충돌과 갈등은 곳곳에서 펼쳐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당당히 목소리를 내면서 국익을 추구하기는 더욱 쉽지 않은 환경이 됐다. 그만큼 실기(失期)하지 않는 대응이 중요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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