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1.11 손진석 국제부 기자)
이탈리아 경제는 오랜 세월 지지부진했다. 배경에는 무솔리니의 망령이 있다.
그런 독재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법률안을 통과시킬 때 상원과 하원이 모두 승인해야 한다는
견제 장치를 전후(戰後) 만들었다. 그랬더니 정쟁(政爭)이 그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조금만 이견이 있어도 경제 개혁 법안이 통과되기 어려웠다.
마테오 렌치 총리는 이런 낡은 의회 구조를 청산하고 싶었다.
마테오 렌치 총리는 이런 낡은 의회 구조를 청산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헌법개혁장관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의회 개혁을 전담시켰다.
여성 변호사 엘레나 보스키는 헌법개혁장관을 맡아 315석의 상원 의석을 100석으로 줄이고,
상원의 법률 제정 권한도 없애는 개혁안을 관철했다. 나라 안팎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보스키 장관은 무임소 장관(minister without portfolio)이다.
보스키 장관은 무임소 장관(minister without portfolio)이다.
각료이면서 특정 부처를 관할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全) 정부적 입장에서 활동한다.
렌치 총리는 헌법개혁장관 외에도 행정조직단순화장관과 지방문제장관까지 무임소 장관을 셋이나 두고 있다.
행정조직단순화장관은 이탈리아식 비효율의 상징인 주(州)·도(道)·기초자치단체의 3단계 행정조직을
2단계로 단순화하는 작업에만 몰두한다.
국가적 과업을 해결하기 위한 고위직 '리베로'인 셈이다.
이탈리아뿐 아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구제금융을 받았던 아일랜드는 2011년 공공지출개혁장관이라는 자리를
이탈리아뿐 아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구제금융을 받았던 아일랜드는 2011년 공공지출개혁장관이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갉아먹는 비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줄이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기존 부처의 국(局)·과(課)에 맡겨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장관직을 만들었다. 아일랜드는 2013년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영국의 내각에는 기존의 노동부 장관과 별도로 일자리 늘리기만 전담하는 고용담당장관이 있다.
고용 창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웃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올해 1억총활약담당상이라는 장관 자리를 신설했다.
이웃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올해 1억총활약담당상이라는 장관 자리를 신설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해 인구 1억명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장관 명칭에 '1억'이란 말이 들어가는 건 촌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절박함이 묻어났다.
그만큼 맡은 임무가 구체적이라는 의미도 있다. 반면 우리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다루려면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아베 총리는 출산율을 높이려면 배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여러 부처를
조정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장관급 조율사를 둔 것이다.
특이한 명칭을 가진 다른 나라 장관들을 그저 해외 토픽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민간 기업들이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맞춰 조직을 수시로 바꿔나가듯 효과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기존의 틀을 탈피하려는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
렌치가 '의회개혁장관'을 임명하고, 아베가 '저출산담당장관' 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담 장관을 두는 방안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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