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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베 총리, 미국 등에 업고 정상회담 끝내니 겁나는 게 없나

바람아님 2015. 11. 8. 11:09

조선일보 : 2015.11.07 

아베 총리는 지난 2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조기 타결을 위한 교섭을 가속하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합의했다. 회담 직후 일본 언론 회견에서 "올해가 국교 정상화 50주년임을 염두에 두고 교섭하겠다"고 말했다. 국교 50주년을 거론한 것은 연내(年內) 타결을 1차 목표로 노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일본에 가자마자 이를 뒤집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당일 저녁 일본 TV에 출연해 "위안부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완전하게 해결됐다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4일에는 여당 간부에게 "연내(年內)라는 말이 있으나 연내로 잘라버리면 어려워진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미 해결됐다면 대체 무슨 교섭을 약속한 것인지, 연내가 어렵다면 '국교 50주년'은 왜 들먹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총리가 이러니 밑에선 한술 더 뜨고 있다.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 부장관은 5일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면 (피해자들의) 마음이 평온해질지, 이제 공은 한국에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런 입장에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부응할 것인지를 논의한 것이 그동안의 위안부 교섭이었다. 그런데 누구더러 해결책을 내라는 것인가.

정상회담의 뒷이야기가 일본 언론을 통해 연일 흘러나오는 것도 비정상이다. '일본 측이 위안부 문제 때문에 회담을 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고 버티자 한국이 양보했다' '일본의 오찬 제의를 한국이 거절하자 아베 총리 주변에서 오찬 따위로 국익을 깎아 내릴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는 등 일방적 내용이다. 일본은 언제나 당당했다는 말이다. 이런 뒷말은 일본이 과연 이번 정상회담에 진지하게 임했던 것인지 의문이 들게 만들고 있다. 중·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뒷말이 거의 흘러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아베 총리는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담을 복원함으로써 아베 정부 외교의 최대 약점이던 동북아 외교를 일정 궤도에 올리는 선물을 안고 돌아갔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 한·일 관계의 완전한 복원은 불가능하다. 아베 정부가 미국을 등에 업고 얻어낸 정상회담의 뒤처리를 이렇게 경솔하게 하면서 한·일 관계가 근본적으로 풀리기를 기대해선 안 될 것이다.

우리 외교부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외교부가 애초부터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혔다면 일본의 더티 플레이가 여기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무엇이 켕기는지 남중국해 문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 문제, 산케이신문 기자 재판 문제 등 정상회담 때 논의한 현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일본 외무성이 공개하자 뒤늦게 시인했다. 3년 6개월 동안 정상회담을 거부하고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던 것인가. 일본은 이런 외교부의 약점을 파고들며 말을 바꾸고 자질구레한 뒷얘기를 흘리고 있다. 우리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하고 사후 관리에도 실패했다. 외교부의 무능(無能)은 도저히 감출 수 없는 병(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