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北韓消息

[세상읽기] 이래서 청년이 희망이다

바람아님 2015. 11. 27. 00:55

[중앙일보] 입력 2015.11.25 

기사 이미지

이영종통일전문기자


지난주 화요일 판문점에선 짤막한 남북한 연락관 접촉이 벌어졌다. 불법 입북한 한국 국적의 남성을 북한 측이 추방 형태로 인계하는 자리였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은 이모(48)씨. 그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986년 5월 부산 미 문화원 점거농성을 벌이다 구속된 전력이 있다. 서울대생 중심의 반미·주사파 효시로 알려진 ‘구국학생연맹’의 멤버이기도 했다. 북·중 국경을 넘어 제 발로 ‘의거 입북’한 이씨를 북한은 신속하게 우리 수사기관에 넘겼다. 받아들여 봤자 부담만 되고 이용 가치도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란 게 관계 당국자의 귀띔이다. 학창 시절 잠깐 동안의 이념적 방황 수준을 넘어선 종북(從北)인생의 비참한 종말이었다.

 80년대 대학가는 주체사상과 반미·반제국주의가 풍미했다. 신입생들은 입학식을 마치기도 전에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이른바 ‘시각 교정’을 받았다. 다국적 기업의 폐해와 매판자본의 문제점을 섭렵하고, 종속이론과 해방신학 등을 머리에 각인시키는 절차였다. 이런 움직임은 신군부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았다. 이들을 ‘좌경(左傾)·용공(容共)’으로 낙인찍고 나선 공안 당국의 압박도 열혈청년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런 틈을 비집고 김일성 독재체제를 맹신하는 종북주의와 주사파도 독버섯처럼 자리 잡았다.
기사 이미지

[일러스트=김회룡]


 한때 ‘386 세대’(30대의 나이로 80년대 대학을 다닌 1960년대생)로 불리던 그때의 주역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486과 586으로 변신했다. 어느덧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로 자리한 것이다. 감수성이 넘쳐 나던 시기에 이념 과잉의 경로를 밟아야 했던 기억 때문일까. 요즘 대학생·청년 세대에 대한 이들 어른의 걱정이 넘쳐난다. 젊은 세대의 대북 인식이 북쪽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그중 하나다. 일각에선 전교조식 교육의 편향성이나 역사 교과서까지 원인으로 꼽는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통 없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대학생·청년 세대들은 아빠·엄마 세대보다 훨씬 더 북한·통일 이슈를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KBS가 지난 8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통일의식 조사에서도 이런 양상은 잘 드러난다. ‘북한은 남한에 어떤 상대인가’라는 질문에 경쟁이나 경계·적대적 대상이라고 답한 20대는 70.8%로 나타났다. 이는 30대의 63.6%나 40대, 50대(각 61.1%)보다 높은 수치였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반드시 통일돼야 한다’거나 ‘큰 부담만 없다면 통일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20대는 64%였다. 이는 50대(76.3%)나 60대(84%)에 비해 적지만 무관심하다거나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눈길을 끄는 건 북한의 실체를 이해하고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려는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박채원(21·숙명여대 글로벌협력학과 3학년)씨를 비롯해 이화여대·성균관대·경희대·중앙대 등의 여학생들이 참여해 만든 ‘UNEAR’ 학회는 ‘가까운 통일(unification in near future)’을 모토로 스터디와 현장 체험을 벌여 대학가 안팎에서 주목받고 있다. 북한 인권 실태나 탈북자 정착 지원 등에 특화된 대학 내 동아리도 속속 생겨났다.

 청년 세대 직장인들까지 함께 참여하는 북한 알기 공부방도 늘고 있다. 이런 모임에서는 “평생 미제 타도를 주민에게 강요한 김일성·김정일은 왜 장례식 운구차로 미제 링컨콘티넨털을 이용했을까”라든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미국 애플사의 컴퓨터를 즐겨 쓰는 이유는 뭘까”와 같은 이슈들이 던져진다. 엉뚱한 것 같지만 북한 체제가 직면한 딜레마를 정곡으로 찌르는 질문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청년세대가 지나치게 보수화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북한·통일 문제를 진보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대학·청년 단체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측면에서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균형감 있게 지적하고 건전한 통일논의를 만들어 가는 데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힘이 실린다.

 우리 대학생·청년들의 대북 비판인식을 키운 장본인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란 얘기도 나온다. 후계자로 자리 잡은 2010년 천안함 폭침 도발과 연평도 포격을 자행함으로써 결정적 반감을 샀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젊은 나이에 3대 세습으로 권력을 넘겨받은 ‘수퍼 금수저’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던 터에 군사도발까지 더해지자 여론이 더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지난 8월 우리 군 부사관 2명의 다리를 앗아간 북한군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 청년 세대들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비판한 것도 동갑내기 병사들의 발목을 비열하게 겨냥했기 때문이다.

 청년세대들의 이런 인식변화를 읽지 못하면 정부의 통일준비 구상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제 이들을 격려하고 뒷심을 보태 주는 건 기성세대들의 몫이다. 지금 우리 대학생·청년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매력적인 통일시대를 꿈꾸며 만들어 가고 있다. 이래서 청년이 희망이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