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北韓消息

[기자수첩] 잊지 않습니다, 1983 아웅산 테러

바람아님 2015. 11. 27. 08:10

(출처-조선일보 2015.11.24 김형원 미얀마 특파원)

관리인 "한국인 많이 와… 추모객 하루 100명 넘어"

김형원 미얀마 특파원 사진1983년 10월 9일, 미얀마 택시 운전사 소웨나잉(49)씨는 아웅산 묘역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꽝!" 진동이 무릎까지 타고 올라왔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북한이 한국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는 거예요."

소웨나잉씨가 32년 전 일을 소상히 기억하는 것은, 요즘 들어 
"아웅산 묘역으로 가달라"고 부탁하는 한국인 손님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적지는 묘역 입구에 자리한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다. 이곳에 매일 100~ 150명 정도의 
한국 추모객이 다녀간다. 미얀마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사전 비자가 필수적이고, 지리적으로 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이백순 주(駐)미얀마 대사는 "일부 여행사가 추모비 방문을 관광 코스에 포함시켜서 하루에도 관광버스가 
두세 대씩 그 앞에 선다"고 설명했다.

아웅산 테러는 벌어진 지 한 달 만에 북한 정찰국 소행임이 드러났다. 
생포된 주범 강영철(작전명 강민철)의 자백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까지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 교과서 대부분도 이 참극을 다루지 않았다. 
아웅산 테러는 기억에서 잊혀가고 있었다.

미얀마 아웅산 묘역 입구에 자리한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 아웅산 테러 당시 순국한 17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매일 100~150명의 한국 추모객이 이곳을 찾는다.
미얀마 아웅산 묘역 입구에 자리한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 
아웅산 테러 당시 순국한 17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매일 100~150명의 한국 추모객이 이곳을 찾는다. /김형원 특파원

반전은 2012년에 일어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웅산 묘역을 방문했는데, 묵념을 올릴 만한 장소가 없었다. 

변변한 추모비 하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조선일보를 통해 형성됐고, 

우리 외교부가 미얀마 정부와 협의를 벌여 2년 만에 추모비가 섰다. 제막식은 지난해 현충일에 열렸다. 

가로 9m, 높이 1.5m 크기에 아웅산 테러 당시 순국(殉國)한 17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추모  비 가운데에 틈이 벌어져 있는데, 이 틈을 통해 폭탄 테러 현장을 건너볼 수가 있다. 관리 부스에서 일하는 

아우뮤(19)씨는 "추모객들은 묵념을 마치고, 그다음에는 폭탄이 어디서 터졌는지를 물어본다"고 말했다.


일주일이면 1000명이 넘는 추모객이 아웅산 묘역으로 발길을 향한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제대로 된 나라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