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요절복통 서울 지하철

바람아님 2015. 12. 3. 10:15

(출처-조선일보 2015.12.01 팀 알퍼·칼럼니스트)


팀 알퍼·칼럼니스트 사진일요일 아침이면 지하철을 타고 한강으로 조깅을 하러 간다. 
매주 지하철에서는 한 편의 희극이 펼쳐진다.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독실한 교회 신자들은 손에 성경을 들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 곁에 딱 봐도 하룻밤 내내 술 마시고 광란의 파티를 즐기다 첫차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 
올빼미족이 드러누워 있다. 
한쪽은 성경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읽고 있는데, 다른 쪽은 지하철에 타자마자 신발을 벗어던지고, 
곧바로 코를 골며 곯아떨어진다. 자리 서너개를 차지하고 드러눕는 건 예사. 
분명 제 정거장에서 못 내리고 수원·인천쯤에 도착해야 깨어날 것이다. 
한겨울 아침 댓바람부터 무릎이 훤히 보이는 조깅용 짧은 반바지와, 
형광 안전조끼를 입고 지하철을 타고 있는 외국인도 있다. 바로 나다.

때로 서울 지하철은 달리기 시합이 벌어진 운동장, 또는 헬스장을 연상시킨다. 뜀박질하는 승객들 때문이다. 
집이 북한산 근처라 주말이면 지하철에서 숱한 등산객을 만난다. 
이들은 해발고도 836m인 북한산 백운대는 거침없이 오르면서 지하철 계단은 걸어 올라가기 싫어한다. 
꼭 노약자용 승강기를 타려고 든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지난주에는 노약자용 승강기를 향해 뛰어가는 등산객들에게 휩쓸렸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은 승강기를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렸다. 

승강기 앞에서 걷고 있던 나는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밀려 넘어질 뻔했다. 세렝게티 초원의 배곯은 사자에게 쫓기는 

한 무리 영양 떼도 이렇게 뛰진 않을 것 같다. 빈자리 경쟁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줌마들이 남자 1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도 놀랄 만한 움직임을 보인다.

19세기부터 지어진 런던 지하철은 도시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비좁다. 

폐소(閉所)공포증을 느낄 것 같은 좁은 열차 안에서 사람들은 몸만 살짝 부딪혀도 서로 미안하다고 한다. 

조용하고, 그래서 지루하다. 상대적으로 신식  인 한국 지하철은 현대적이고 널찍하다. 

코미디와 스포츠가 펼쳐지는 역동적인 장소다. 

두 나라 사람들의 지하철 문화가 다른 건 이 공간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12월 일사일언은 팀 알퍼 디자인하우스 기자를 비롯해 정의석 인제대 상계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배순탁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영화감독 서영수, 양정무 한예종 미술원 교수가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