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性 ·夫婦이야기

결혼생활에 찾아온 불청객…외도(外道)의 심리학

바람아님 2015. 12. 7. 00:43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5.12.06

결혼생활의 불청객 외도, 본능일까 … 연구결과 보니

대부분의 불륜은 성적 판타지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자와의 우정이 깨졌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기사 이미지

2000년 국내 성의학 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혼남녀의 80% 이상이 외도 욕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중앙포토


1996년 미국의 한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실렸다. “혼외 관계의 원인과 결과를 연구하는 교수입니다. 설문지와 인터뷰에 응해주실 분을 찾습니다. 비밀은 보장됩니다.”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인터뷰에 응했을까? 놀랍게도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들어 온갖 종류의 외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리처드 테일러 교수는 이 생생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나중에 저서 <결혼하면 사랑일까>를 출간할 수 있었다.

외도만큼 우리 주변에 흔한 예술의 소재는 또 없을 것이다. 모든 스토리의 8할이 사랑 이야기라면 그중에서 다시 80%가 금지된 사랑 이야기이다. 외도 문제로 기차에 몸을 실은 여자부터 가슴팍에 주홍의 A를 단 여자까지. 집도 절도 없이 가정을 벗어나 불륜의 그녀를 위해 고시원에 사는 남자까지.

기혼여성 82% “다른 남자와 섹스하고 파”


<결혼하면 사랑일까>의 저자 리처드 테일러는 “외도로 인해 결혼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실패의 결과로서 외도가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 사진·중앙포토


사람들은 왜 외도를 저지르는 걸까? 평생 한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국내 성의학 연구소가 2000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혼남성 2400명 중 72.8%가 실제로 배우자 이외의 여성과 섹스를 한 것으로 응답했으며 88.5%가 배우자 외의 여성과 섹스를 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혼여성의 15%가 혼외정사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 외도 경험은 낮았지만 “남편 이외의 남자와 섹스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있다’가 무려 82%를 차지했다.

한마디로 이 수치는 기혼남녀의 약 80% 이상이 외도 욕구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으며, 단지 여성의 경우 자신의 욕구를 실행으로 옮기는 비율이 남성보다 적을 뿐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욕망의 진화>의 저자 진화심리학자 데이비스 부스는 ‘외도와 나이의 연관성’이라는 연구에서 남자의 외도는 나이에 비례해 증가하는 반면, 여성의 외도는 생식능력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남편의 외도율은 16~35세가 20%, 36~40세가 26%, 41~45세가 30%, 46~50세가 35%로, 10대 후반에서 50대까지 꾸준히 증가하다가 말년에 이르러 감소 추세를 보인다. 반대로 여성의 경우는 배란 현상이 왕성한 16~20세에는 외도율이 6%에 그치지만, 26~30세는 14%, 31~40세는 17%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데이비스 부스는 “남성은 성적 능력이 왕성한 청년기부터 성적인 욕구가 강하게 지속되지만, 여성은 임신 가능성이 적은 중·장년기에 외도 욕구가 높아진다”고 결론을 내렸다.

슬프게도 수많은 심리학 연구는 외도가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본성으로, 인간이 수백만 년 전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씨 뿌리기 본능을 참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거듭 입증하고 있다. 동물행동학자 바라쉬(Barash)는 1996년 새들의 행태 연구를 통해 암수 금실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온 거위, 백조, 원앙, 휘파람새 등 일부일처제의 상징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조류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새끼 6마리 중 5마리가 혼외 자식이라는 연구 결론을 내렸다. 놀랍게도 4천여 종이 넘는 포유동물 중 일부일처제의 짝을 갖는 종은 3%인 100여 종에 불과하다.

외도가 본능이라는 또 다른 가설은 다음 실험에서도 입증된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암컷 생쥐에게 두 종류의 수컷 쥐를 제시했다. 한 부류는 총각으로 혼자 있는 수컷 생쥐의 냄새를, 또 다른 부류는 다른 암컷 생쥐와 함께 있던 수컷 생쥐의 냄새를 맡게 했다.

연구결과 암컷은 특이하게도 다른 암컷과 함께 있던 수컷의 냄새를 더 좋아하고 쫓았다. 이미 다른 암컷이 그 수컷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은 그 수컷이 다른 암컷이 눈독을 들일 만큼 검증된 상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또 다른 진화심리학자 뷰크(Buunk)는 외도 연구를 통해 선사시대부터 남성들은 더 많은 여성에게 임신을 시키고 더 많은 자손을 번식함으로써 유전적 혈통을 강화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여성은 자기가 낳은 자녀들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유일한 보호자를 찾는 일이 기본적인 목표였기 때문에 여성보다 남성들의 외도가 더 빈번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못생긴 여비서, 미모의 아내를 제치다

?영화 <라스트나잇>의 한 장면. 주인공 조안나는 남편이 출장 간 사이 자신의 첫사랑과 우연히 재회한 후 마음이 흔들린다. / 사진·중앙포토


그러나 대상을 동물에서 인간으로, 생식에서 결혼으로 그 관점을 바꾸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결혼하면 사랑일까>의 저자 리처드 테일러는 외도로 인해 결혼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실패의 결과로서 외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진화심리학은 성(性)이나 쾌락 번식과 생식의 문제가 외도로 이어진다고 정의하지만, 실제로 외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기존의 편견과 달랐다. 무절제한 사생활이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외도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외도를 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 내면에는 다양한 욕구가 있다. 이를테면 결혼생활에서 인정과 소통을 원한다. 배우자로부터 인정받는 요소들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누구나 외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배우자가 자신을 배신했다면 제 삼자가 남편이나 아내를 유혹해서가 아니라 결혼생활 그 자체가 나를 이미 배신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부부생활에서 대화는 언어로 하는 섹스이고 성은 육체로 하는 대화인 바, 둘 중의 하나만 맹물같이 변해버려도 이 지극한 즐거움을 새로운 사람과 다시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뜨랑 블리에 감독의 작품 <내겐 너무 이쁜 당신>이란 1989년도 프랑스 영화는 외도를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중년의 남자 베르나르는 부유한 자동차 상이자 가장으로 그에게는 남들이 한 번쯤은 쳐다보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내 플로랑스가 있다.(플로랑스 역에 당대의 프랑스 최고 여신으로 꼽히는 배우 캐롤 부케가 나와 더 실감난다)

하지만 소위 김태희 같은 아내를 두고 그는 못생긴 비서 콜레트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비서콜레트는 아내 플로랑스와는 여러모로 대조되는 여자다. 못생긴데다 뚱뚱하고 사무실의 청소를 맡고 있다. 그런데도 베르나르에게 콜레트는 너무나 예뻐 보인다.

이처럼 못생긴 비서마저 예뻐 보일 정도로 세상 모든 여자가 다 눈에 들어오는데 왜 내 아내만 여자로 안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습관화의 심리 기제 때문이다. 아무리 매력적인 상대와 살아도 시간이란 괴물을 이기기는 어렵다.

이런 습관화의 이유 외에도 영화 <내겐 너무 이쁜 당신(Too Beautiful For You)>은 외도 심리의 또 다른 원인을 사람들의 달걀껍질 같은 자존감에 있다고 말해준다.

주인공 베르나르는 비싼 자동차를 모시는 것같이 도도한 아내 플로랑스와 있으면 자신이 당당한 남자임을 잘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는 비서 콜레트와 만나면 자존감이 상승한다. 이 비서한테는 마음 편히 안길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베르나르는 아내도 정부도 다 갖고자 아슬아슬한 줄타기 노력을 벌인다. 아내는 다른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트로피로 갖고 싶고, 정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쉴 숨겨진 침대로 또 몰래 갖고 싶다.

물론 결과는 베르나르가 두 여자 모두에게 차이게 됐지만. 영화 내내 흐르는 슈베르트 음악과 함께.

결혼생활의 불만과 자존심 외에도 외도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 레브스타인(Reibstein)과 와이너(Weiner)는 아동기에 부모와 소통이 부족했거나 관심을 제대로 못 받았던 부정적인 경험이 훗날 부부생활에 많은 갈등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아동기에 발생한 불우한 상흔은 타인에게 자신의 내면적인 욕구를 충족하려 드는 동력을 만들어낸다.

의존적인 사람이 불륜 가능성 높아

외도는 자신의 도덕에 반하는 행동이다. 그 때문에 현명한 부부라면 나이가 들면서 서로 변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 사진·중앙포토


때문에 의존적인 사람도 외도의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지목된다.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자란 아동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사람을 선택해 의존하려 한다. 그러나 부모 역할을 하는 배우자가 충분한 안정감을 베풀지 않았을 경우 이에 반감을 가지고 다른 이를 찾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외도심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긴장에 대한 매혹’이다. 외도에는 수많은 금기가 가로막고 있다. 남몰래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다는 스릴은 외도를 더욱 짜릿한 게임이 되게 한다. 이와 관련 아주 재미있는 실험이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서스펜션 브리지’에서 이루어졌다. 캐나다에 있는 이 현수교는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는 캐필라노 강 아래로 아찔하게 높은 곳에 매달려서 끊임없이 흔들거리는 위험한 다리다. 캐필라노 계곡의 다른 곳에는 이와 반대의 아주 안전하고 튼튼한 다리가 또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이 두 다리 위에서 같은 실험이 진행됐다.

심리학자들은 각 다리에 한 명의 멋진 여성을 배치해두었다. 남자가 다리 위에 오면 이 멋진 여성이 다가와 조사할 게 있다며 설문지를 작성하게 한다. 그리고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전화 달라면서 자신의 연락처를 건네준다. 위험한 다리와 안전한 다리, 어느 쪽에 서있던 여성에게 실험 후 더 많은 전화가 걸려왔을까?

그렇다. 걷기도 힘들 정도로 흔들거리는 무섭고 아찔한 다리를 겨우 건너온 남성 중 절반이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면 아무 생각 없이 견고하고 안전한 다리를 건넌 남성은 8명 중 단 한 명만이 전화를 걸었다. ‘휘청거리고 위험한 다리’라는 극적인 상황, 즉 긴장감은 다리 위에서 만난 여성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몰래 하는 사랑이 더 맛있는 이유. 말릴수록 더 불타오르는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는 마치 십대 아이들처럼 외도를 일상의 윤기가 돌게 만든다.

솔직한 대화만이 사랑의 지름길

그래서 외도에 빠진 남편이나 아내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그 징후를 알아 차릴 수 있다. 갑자기 멋을 내고, 갑자기 젊어 보이고 싶어 하고, 갑자기 활기가 돌고, 갑자기 어디엔가 전화를 자주 하고, 갑자기 외박에다, 갑자기 배우자에게 잘해주기도 한다. 반면 잠자리를 거부하고 결혼 생활에 타박이 늘어날 수도 있다.

외도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영위했는지 깨닫거나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외도는 자신의 가치와 신념과 도덕에 반하는 행동이다. 대단히 뿌리 깊은 죄책감을 덮기 위한 자기 합리화와 상대에 대한 몰두가 더 필요해진다.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하지만 아내와 사이가 나쁘며 사실은 너만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도 건넨다. 사실상 외도 상대에게 그토록 깊은 매혹을 느끼는 것도,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부도덕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소위 ‘결혼했으나 가능 함’이라는 MBA(Married but Available) 자격증을 딴 사람들, 즉 상시 외도를 하는 사람의 경우 죄책감보다는 그냥 삶의 스타일이 그렇다며 스스로 외도를 습관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와이셔츠의 립스틱 자국에서,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무심코 흘린 밀어에서, 함께 간 수영장 사진을 들켜버리면 남는 것은 상대 배우자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겨줌과 동시에 결혼 생활의 위기가 다가온다. 상대에 대한 미움과 의심이 더해지고 의혹은 짙어지며 ‘왜 내 사생활을 훔쳐보느냐’며 오히려 외도를 저지른 배우자가 뻔뻔하게 더 큰 목소리를 낼 때도 있다.

현명한 부부라면 나이가 들면서 서로 변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성생활이 불만이라면 서로 솔직하게 자유롭게 시도해보고, 어떤 기대가 좌절되었는지도 이야기해봐야 한다. 때론 어떤 거짓말이나 속임수보다 솔직한 말 한마디가 상처가 덜 될 수 있다.

외도라는 소나기가 거세다면 때론 배우자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려보라. 질투심과 적개심, 그리고 화나는 감정을 인정하되 서로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아야 비로소 용서가 다가온다. 작가 존 그레이는 외도를 도박장에서 그동안 저축한 돈을 몽땅 날려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가진 돈을 몽땅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 이전에 한 인간으로,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오해하는지 알아 볼 수 있다면 언젠가 결혼의 수레바퀴는 다시 돌아가리라. 오히려 외도 이전보다 더 힘차고 굳건하게.

심영섭 - 1966년생. 서강대 생명공학과 졸업. 고려대 심리학 석·박사. 현재 대구사이버대학교 전임교수, 심영섭 아트테라피&상담센터 사이 소장, 한국사진치료학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영화, 내 영혼의 순례> <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 <영화치료의 이론과 실제> <영화치료를 위한 영화수첩> 등이 있다.

기사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