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12.08
지난 주 서울중앙지법엔 특이한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안찬일 박사를 비롯한 탈북인사 3명으로부터 명예를 훼손당했다면서 미국에 사는 중년 부부가 6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한 건데요. 관심을 끈 건 원고인 이들 부부가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이모인 고영숙과 그의 남편 이강 씨란 점입니다.
고씨 부부는 고소장에서 “김정일 비자금으로 우리가 도박을 하거나 성형수술을 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하는데요. 안 박사 등 피고 측은 “평양 로열패밀리로 호의호식 하던 고씨가 김정은 독재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고 발끈하고 있죠.
이번 사태를 계기로 탈북·망명하거나 해외에 은둔·체류 중인 김정은 가족 및 친인척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고영숙 씨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2004년 유선암으로 사망)의 동생인데요. 김정은이 스위스 조기 유학을 할 때 후견 역할도 했던 고영숙은 1998년 남편 이강과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김정일 정권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아 겁난다”는 이유였다는군요.
미국은 핵심 탈북 인사를 받아들인 후 중앙정보국(CIA)의 철저한 심문으로 고급 정보를 뽑아냅니다. 대북 첩보위성이나 감청으로 수집할 수 없는 김정일·김정은 관련 성향이나 내밀한 속사정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게 정보당국 관계자의 귀띔입니다. 북한의 보복이나 신원 노출을 막기 위해 추적이 어려운 ‘증인보호 프로그램(Witness Protection Program)도 가동합니다.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게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는군요. 우리 정보기관이나 언론이 이들을 쫓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그런데 고영숙 씨의 경우 이번 소송 제기로 보호막을 벗어던진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남편 이씨가 소송대리인인 강용석 변호사를 찾아 서울로 오는 바람에 그와 부인의 행적이 우리 정보당국은 물론 서방 언론에 노출됐죠. 대북 소식통은 “고영숙 씨는 현재 미국 한인타운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합니다. 북한의 중동 미사일 수출 극비정보를 갖고 97년 망명한 이집트 주재 장승길 전 북한 대사도 공훈배우 출신인 부인 최모 씨와 미국에서 수퍼마켓을 한다는데요. 아무래도 한인 상대가 아니면 사업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군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입장도 곤란해졌습니다. 대북 비판 발언을 쏟아내던 논객들에게 제동을 건 것은 고맙겠지만, 탈북·망명으로 얼룩진 가족 내력이 드러난 때문이죠.
사실 김정은 정권 들어 탈북자 단속이 강화되자 북한 주민 사이에선 “백두혈통(김정은 가계를 지칭)도 탈북 가족 아니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고씨 부부 외에도 이른바 ‘평양 금수저’ 계층이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망명 사건을 일으킨 걸 지칭하는거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여인인 성혜림(2002년 사망)의 경우 언니 혜랑씨와 딸 남옥 씨 부부가 프랑스로, 아들 일남(탈북 후 ‘이한영’으로 개명)씨는 한국으로 망명했죠.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씨도 후계경쟁에서 밀려난 뒤 마카오 등지에서 체류하다 2013년 이후 은둔중입니다.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체코 주재 북한대사도 88년 평양을 떠난 뒤 서방 대사로 전전하 고 있습니다.
오는 12일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한 지 2년째 되는 날입니다. 지난 4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지난달엔 핵심실세 최용해 노동당 비서도 몰락했죠. 곧 집권 5년차를 맞는 김정은 체제에서 평양 로열패밀리들에 눈길이 쏠리는 건 이런 상황도 한 몫합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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