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조상님이 호랑이를 웃기게 그린 이유

바람아님 2015. 12. 13. 00:38

[J플러스] 입력 2015.12.09 


hyung님네 萬話가게 <13> 호랑이 이야기
조상님이 호랑이를 웃기게 그린 이유


갑작스런 호랑이 붐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최민식 주연의 영화 ‘대호’가 개봉한 데 이어 호랑이 그림 전시회도 같이 열렸습니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시작된 ‘백성의 그림전 첫 번째-대호’(11월 27일~2016년 2월 28일)입니다. 알고 보니 두 작품이 서로 힘을 합쳤네요. 전시장 한켠에는 영화의 미공개 스틸 사진이 붙어있고 메이킹 필름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2년 전부터 호랑이 민화 전시를 준비해 왔는데, 영화사측이 12월 개봉 얘기를 해와서 마침 시기를 맞추게 됐다”는 게 9일 만난 서울미술관 안진우 팀장의 설명입니다.

이번 전시에 나온 호랑이 그림은 30점 정도 되는데 호랑이만 이렇게 모은 전시는 거의 처음일 것이라네요. 이유가 국내에 남아있는 호랑이 그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빼앗아간 것이 많았고, 1980년대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뭉칫돈을 가져와 인사동에서 싹 쓸어갔다고 합니다. 각기 다른 소장자들을 찾아가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빌려왔는데, “영험한 호랑이 그림을 밖으로 내돌릴 수 없다”며 거절하는 분들이 많아 고충이 많았다고 하네요.

사실 우리 전통그림 속 호랑이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실제로 만나면 즉시 잡아먹혀 뼈도 못 추릴 것이 분명하건만, 조상들은 이 무서운 호랑이를 까치와 노는 귀여운 심지어 우스운 모습으로 표현했죠. 왜 그랬을까요. 백성들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양반과 조정을 어떻게든 희화화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맹수 같은 권력을 웃기게 그림으로써 삶의 한 조각 위로와 재미로 삼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전시에서 제 시선을 붙든 것도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까치호랑이’(종이에 수묵채색, 80 x 48cm)를 볼까요.



와, 온몸의 털이 번개라도 맞은 듯 온통 곤두서 있네요.
눈동자는 특이하게도 다이아몬드형입니다. 만화에서 뭔가 깜짝 놀랐을 때 표현하는 바로 그대로입니다. 그러고 보니 머리 위에는 까치 한 마리가 재미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주둥이를 열고 있네요. 까치가 갑자기 “깍깍”하고 짖어댔고 거기에 “아이구 깜짝이야”하고 놀라는 듯한 호랑이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모습이 배꼽을 잡게 합니다.

‘호렵도(胡獵圖)’는 사냥꾼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사냥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등장 인물들이 중국인처럼 호복(胡服)을 하고 있는데 이는 동물을 죽이는 일을 꺼림칙하게 여긴 조상들이 대신 중국인들의 모습을 빌려 그렸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호랑이 호(虎) 대신 오랑캐 이름 호(胡)자를 썼고요.

그런데 병풍으로 만들어진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아주 재미난 광경이 있습니다. 사냥꾼들의 위협에 대부분의 동물들이 도망가고 있는 가운데 호랑이 한 마리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서 사냥꾼의 창을 두 손으로 턱 붙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호렵도’ 부분, 19세기, 종이에 수묵채색, 108 x 158.5 cm( x 2)


마치 “너 자꾸 까불면 죽는다”하고 으름장이라도 놓는 듯하네요. 이 그림에서 괴롭히는 못된 양반에게 저항하는 민초들의 모습이 오버랩된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그림 한 켠에 슬쩍 해학과 풍자를 담아낸 조상들의 여유가 왠지 웃프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시절이 하수상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형모 중앙SUNDAY 문화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