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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멀어진 문학을 다시 부르며

바람아님 2016. 3. 4. 07:30

(출처-중앙일보 2013.10.22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십 년 전쯤, 미국 서부 해안에 위치한 살리나스라는 작은 촌락을 방문한 적이 있다. 
20세기 전반 미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파헤친 존 스타인벡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 
끝없는 평원에 펼쳐진 풍경은 작가가 묘사한 1920년대의 그것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전통적 과실나무에 더하여 블루베리, 피스타치오 같은 신종이 들어섰고 백인 노동자가 남미 이주민들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읍내에서 만난 청년은 작가의 존재를 몰랐으나 구멍가게 할머니는 반갑게 기념관 위치를 알려줬다. 
동양인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신통해 하면서 말이다. 
퓰리처상(1939년)과 노벨문학상(1962년)을 수상한 작가가 깨우쳐준 그 정신, 
‘신성한 노동’에 대한 자부심으로 평생 그 작은 가게를 지켰을 터였다.

 문학상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의지할 곳 없는 평범한 서민들의 고된 여정에 길잡이가 된 작가의 불빛 같은 언어와 
그 언어가 빚어낸 아늑한 공간이다. 우리에겐 이런 게 있는가. 
노벨문학상이 먼 나라 작가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에 은밀한 기대를 접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세계인이 흠모하는 문학상이 20세기 경제총아 한국에 문화훈장이라도 달아줄 것을 고대했을지 모른다. 
문학은 영혼과 현실이 치고받는 싸움의 기록인데 책은 멀고, 골목 책방은 자취를 감추고, 
어쩌다 서점에 가도 문학코너를 멀찍이 우회하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었던가? 계발서와 트렌드 서적이 판을 치는 나라, 
그래서 전업작가가 굶고 명문 대학에 작가 지망생을 찾아볼 수 없는 나라에서 문학은 기어이 죽고 작가는 예술혼을 잃는다.

 춘천 호반 ‘문학공원’ 한가운데 비치된 빈 석판엔 이렇게 씌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자신의 흉상이 빈자리에 올려지는 것을 생전에 목격할 사람이 나타날까. 
노벨문학상이 정신적 높이의 유일한 척도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걸 탐하기 전에 문학을 어느 구석에 내팽개쳤는지를 
우선 점검해 보는 게 순서다.

 ‘문학의 나라’ 한국에서 문학은 오래전에 죽었다. 
역량 있는 작가와 걸출한 작품이 출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학이 번성할 환경과 전통을 우리 스스로가 짓밟은 탓이다. 
척박한 현실도 성찰과 관조로 짠 언어의 집에 유숙하면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선비들은 수심정기(修心正氣)를 위해 글쓰기를 일상화했고, 서민들은 고전소설과 판소리 자락을 줄줄 외웠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소설, 시, 희곡에서 정신의 양식을 건지고 있는가. 
또는 ‘문학 한국’을 만들 젊은 세대는 식민지 시대는 차치하고라도 
1960년대, 70년대 작가들이 시대와의 불화를 어떻게 인두질했는지를 알고 있는가.

 문학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이광수가 문학을 지(知), 정(情), 의(意)의 고유영역으로 독립시킨 이래 1970년대까지도 문학은 시대의 고뇌를 담아내는 
저수지였고, 작가는 지정의(知情意)를 융합해 시대정신의 출구를 뚫는 전사였다. 작가는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다. 
주요 신문에 매월 월평이 게재됐고, 문학상 수상자는 단번에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사법고시 합격이 부럽지 않았던 그 자존심이 요즘 가끔 노벨상 후보군에 오르내리는 작가군을 배출했던 거다. 
작가 고은은 억압적 정권이 빚어낸 온갖 군상들의 난무(亂舞)를 ‘인류애’로 풀어내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문열은 ‘부성(父性)의 재해석’, 황석영은 ‘분단국가의 비애’로 노벨상위원회의 관심을 사기는 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많은 작품이 번역되었다. 
그런데 그 한국적 주제들은 세계사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문학적 열정과 보편성을 얻지는 못했던 거다. 
문학의 불꽃이 사그라진 나라, 영혼과의 대화가 언어와 행동양식으로 전환되지 않는 나라에서 고군분투했던 
이 뛰어난 작가군은 결국 궁핍한 우리의 문학 환경을 넘지 못한다. 
예술가 태반이 월 소득 100만원 이하로 극히 가난하고 문학인은 그 비율이 90%로 단연 바닥이다.

 몇 년 전 인터뷰 자리에서 고(故) 박경리 선생께 물은 적이 있다. 
노벨상을 기대하시는가라고. 당시 프랑스어로 『토지』 1부가 번역 출간되었기에 드린 질문이었다. 
답은 뜻밖에 단호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 
문학은 인정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서민들의 가슴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고투라는 뜻이었다
평생 세상과 담쌓고 『토지』에 몰입했던 대작가의 포부는 우리가 발 딛고 선 역사의 저변을 한과 연민의 언어로 깔아놓는 
것이었다. 문학이 일상에 스미고, 일상이 예술적 상상력을 생산할 때 각박한 현실도 풍요로워지는 법이다. 
문학공원의 빈 석판이 채워지기를 고대한다면 자신의 생활공간에 문학의 편린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우선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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