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시니어 에세이]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

바람아님 2016. 3. 8. 23:53

조선닷컴 : 2016.03.08 10:03


세상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정치인일까, 아니면 나라의 경제를 흔드는 경제인들일까? 가끔은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대중일까? 모두 아니지 싶다.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는 곧 나 자신이다. 세상의 출발이 나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도 그런 의미로 보고 싶다. 자신이 바로 서야 가정과 나아가 나라가 바로 서게 된다. 내가 바로 선다는 것은 나의 아집을 앞세우지 않고 상생하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위상정립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당당해져야 당당한 사회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많은 헌신을 다하였다.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꿈을 이루지 못한 경우도 많다. 노년에 이르러 삶이 고단한 경우도 많다. 찬바람이 쌩쌩 이는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경우들은 자신도 모르게 죄인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많은 부모가 그렇지 싶다. 부모 마음이다. 자식에게 더 많은 것을 주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행여라도 부담될까 보아 아픈 몸을 참으며 목숨을 끊는 경우도 그런 이유지 싶다. 결과야 어떠하든 시니어 세대는 최선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세상을 정말 당당하게 사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

50세 중반인 그분의 따님은 친정어머니인 할머니를 모시고 가끔 여행을 함께한다.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린다. 엄마와 딸의 수다도 이어지고 한번은 딸을 은근한 미소로 바라보며 한 말씀 한다. “너는 참 좋겠다! 내가 살아 있어서 여행도 시켜줄 수 있어서.”

처음엔 선뜻 그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부분 부모는 여행을 시켜 드리면 자식에게 고마워하기 마련이다. 자녀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얘야, 고맙다. 이렇게 좋은 곳을 구경시켜주어서.” 이렇게 말하기 일쑤다. 그 할머너는 반대였다. 내가 살아 있어 네가 나를 여행을 시켜 드릴 기회가 되니 얼마나 기쁘냐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부모 모두가 오래 살아 있는 일이라고 했으니 맞는 말이다. 혼자 된 지 세월이 꽤 흘렀다. 늘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는 딸이다. 건강이 걱정이고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점도 그렇고, 걱정은 한둘이 아니다. 함께 살고자 하여도 어머니가 따라 주지 않는다. 여느 어머니처럼 딸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일 테다. 아직은 혼자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어른들의 앞날이란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이 어렵다. 걱정은 떠나지 않는다.

친정어머니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여행할 때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늘 당신의 어머니가 마음에 밟혔다. 함께 여행하고 싶어도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어도 옆에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어떻게 보면 한으로 마음에 남아있는 일의 하나다. 그 안타까운 마음을 딸에게 표현한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누가 뭐라고 하여도 자식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은 후회로 가득하다. 자식 사랑이, 자식에 대한 보살핌이 모자랐다며 죄인처럼 살아간다. 인생 2막을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이제는 당당해져도 좋은 세월을 살았다. 자기의 삶에 대한 긍지도 필요하다. 내가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칠 때 그 기운은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주지 않을까? 헌신으로 세상을 살 만큼 살아온 시니어 세대가 당당해져야 하는 이유다. “너는 참 좋겠다. 내가 살아 있어서.” 그 할머니처럼 말이다.

변용도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