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되었을 때의 당혹감을 기억합니다. 아비 노릇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세상이 낯선 만큼, 제겐 자식 키우는 게 생소했습니다. 아이가 뭔가에 호기심을 드러내거나 반응하면, 그냥 지켜봐야 할지, 아니면 끼어들어 방향을 잡아주는 편이 나을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나무랄 일도 아닌 걸 굳이 못 하게 하며 꾸짖은 적도 꽤 있었습니다. 그러다 고백했습니다. “야, 나도 아빠 노릇 처음 해보는 거라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이는 커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그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신임 교수 시절에도 서투르긴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면, 자식 많이 키워낸 부모처럼 노련한 선생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수업은 빠지지 마세요. 과제도 베끼지 말고 열심히 하고요. 지도교수도 정기적으로 찾아가고, 수업시간에 궁금한 게 있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질문하세요. 동아리에도 들어가 되도록 다양한 체험을 하는 것도 좋아요. 방학 땐 여행도 해보세요. 너무 좁게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관심 분야, 인접 분야, 중요 분야로 옮겨가며 폭넓은 독서를 할 필요도 있어요. 외국어 공부를 따로 하느니 원서 읽기에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그동안 신입생들에게 해온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좀 공허합니다. 언제든 할 수 있는 조언이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만나는 학생들은 대략 비슷해 보여도, 그들이 딛고 서 있는 자리는 조금씩 바뀌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켜켜이 쌓여 세상은 인제 과거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대학도 물론 변했습니다. 요즘 교수들은 예전보다 논문을 훨씬 더 많이 쓰지요. 문제는 변화의 방향과 내용입니다. 매우 바쁜 일상을 살지만, 선생들은 자신이 학생이었던 시절 받은 20세기 방식의 교육을 21세기의 청년들에게 거의 그대로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육 시스템은 어떨까요? 융합을 말하는 시대에 전공과 교양교육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립니다. 일정 부분 공감합니다. 다만 과거 방식 그대로의 기초교육이라면 동의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알고리즘에 불과한 알파고가 바둑 천재인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이 칼럼이 신문에 실릴 즈음이면 이미 첫판의 승패가 가려져 있겠지요.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알파고가 거의 모든 지구인보다 바둑을 잘 두며, 또 점점 더 강해진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을 테니까요.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고민하며 미래를 모색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3월의 대학에 활력을 몰고 온 신입생들한테 이제 무슨 말을 새로이 해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앞에 둔 저의 지금 심정은 처음 아버지가 되었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백할밖에요. “20세기에 학생이었던 교수들에겐 이 모든 상황이 너무도 낯설답니다.” 무력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문제를 보지 못하거나 자기기만에 빠져 해법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보단 이런 고백이 그래도 나으리라 여깁니다.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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