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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의심받는 부성(父性)

바람아님 2016. 3. 17. 23:54
한국일보 2016.03.17. 20:10

부성이 의심받는 시대다. 잇단 아동 학대 사건에서 친부들이 보여준 이해하기 힘든 행동 때문이다. 특히 일곱 살 난 원영이를 계모가 화장실에 감금하고 찬물과 락스를 뒤집어씌웠는데도 친아버지가 묵인 또는 방조한 것을 보면 남자에게 과연 부성이라는 게 있기나 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심을 갖고 옛 소설 ‘장화홍련전’을 읽으면, 친부는 계모가 두 딸 장화와 홍련을 학대한 사실을 알지 못한 게 아니라, 원영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학대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인간의 부성이 존재하는지를 알아보려면 동물에게 그것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도 방법이다. 부성이 놀라울 정도로 강한 녀석이 가시고기 수컷이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쉬지 않고 몸을 흔들어 산소를 공급하고 다른 물고기가 오면 죽기살기로 맞선다. 그렇게 먹지도 자지도 않고 힘을 쓰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황제펭귄 수컷은 암컷이 낳은 알을 제 발 등에 올려 놓고 먹지도 않은 채 4개월 동안 몸으로 품어 부화시킨다. 놈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게 하는 것 역시 부성이다. 동물에게 있는 부성이 인간에게 없을 리 없다.


▦ 그러나 인간의 부성은 모성에 비해 그 정도가 약하다. 부성 불확실성 가설에 따르면 여자는 제 몸에서 출산을 하기 때문에 내 자식이라는 확신이 강하지만 남자는 내 자식이라는 확신이 작아 그런 차이가 나타난다. 정신분석학자 루이지 조야는 인간의 부성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것, 따라서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생긴다고 본다. 그렇다면 학대를 눈감아준 아버지의 행동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수정 경기대 교수에 따르면 “재혼한 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은 종족보존 본능이 강한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로 물려주려면 여자의 몸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여자의 환심을 사려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아내가 못마땅해도 결혼관계를 유지하려면 자식보다 아내를 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배우자와 자식이 다툴 때 대체로 아내는 자식 편을, 남편은 아내 편을 드는 개인적 관찰의 결과와도 일치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를 따르더라도 아내의 학대를 묵인한 아버지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본성으로 이해해줄 차원을 넘은 것이기에 엄벌이 필요하다.


/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