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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 27] 시진핑 주석에 주연 자리 빼앗긴 리커창 총리

바람아님 2016. 3. 18. 00:06
[J플러스] 입력 2016.03.17 03:00

유상철 기자는 1994년부터 98년까지 홍콩특파원, 98년부터 2004년까지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간 중국연구소 소장을 지낸 중국통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변모해나갈까요. 그에 맞춰 우리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해나가야 할까요.
유상철 기자의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은 이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칼럼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중국엔 봄·가을로 중요한 정치 행사가 열린다. 보통 가을에 중국 공산당 회의가 열려 대략의 방침을 정한다. 이게 이듬해 봄인 매년 3월 열리는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정부의 정책으로 굳혀지는 공식화의 길을 걷는다.

가을의 당 대회는 중국 공산당 자체의 행사라 외부 노출이 잘 안 된다. 반면 봄에 열리는 양회는 내외신 기자에게 개방된다. 취재를 하고 싶어도 이런 저런 걸림돌이 많아 취재가 안 되곤 하는 중국인지라 양회는 기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행사다.

최근의 관행을 보면 3월 3일 자문기구 성격의 정치협상회의(政協)가 먼저 열리고 5일엔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가 개최된다. 정협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 정협 위원들의 돌출 발언이 나오거나 스포츠 스타나 영화 배우 등의 정협 위원이 모습을 드러내면 모를까 ‘깍두기’ 같은 정치 행사다.

양회에서 중요한 건 전인대다. 전인대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개막식날 총리의 정부공작보고다. 정부의 업무를 보고하는 것으로 총리는 보통 두 시간에 걸쳐 지난해 상황을 살핀 뒤 앞으로 할 일을 말한다.

여기에 중국의 그 해 경제성장률 목표 등 여러 중요 수치가 나온다. 국방비 지출이 10%대 이상으로 밝혀지면 외신은 호들갑을 떤다. 중국의 군사대국화 운운 등 하면서. 올해의 경우 한 자리수인 7.6%에 그쳤는데 중국군 내부에선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반면 외신은 ‘감춰두고 공개하지 않은 군사 비용이 많다’며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총리는 젊게 보이려 머리카락도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목청을 가다듬어 두 시간 여 보고를 한다. 중국 전역에 생중계될 뿐 아니라 CNN 등을 통해서도 세계에 생중계 되기도 해 그야말로 전인대의 주인공이 총리란 점을 실감하게 된다.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양회 기간 진행되는 여러 장관급 인사들의 기자회견 중 중국 외교부장에 의한 내외신 기자회견이다. 각국 기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나라와 관계 있는 질문할 기회를 얻기 위해 ‘저요 저요’ 손을 드는 모습이 마치 초등학교 교실을 연상하게 할 정도다.

이 또한 TV로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생중계된다. 질문권을 얻느냐 마느냐가 그 기자가 속한 나라가 중국에서 얼마나 대접을 받고 있는가, 또 어느 언론사 기자이냐가 때론 그 나라 언론사 중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느냐의 잣대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어 기자들로선 필사적이기도 하다.

세 번째 관전 포인트는 양회 폐막일이자 전인대 폐막일(정협 폐막일은 보통 이보다 이틀 빠르다)에 전인대 폐막 직후 진행되는 총리에 의한 내외신 기자회견이다. 이 또한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행이 생긴 건 중국 경제의 짜르란 별명을 얻었던 주룽지(朱鎔基)가 1998년 총리에 취임하면서다. ‘100개의 관을 준비해라. 그 중 하나는 내 것이다’라며 반부패 운동을 펼쳐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주룽지 총리의 기자회견은 거침이 없었고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주룽지가 직접 지명해 질문권을 주었던 홍콩 피닉스TV의 앵커 우샤오리는 일약 스타가 돼 이후 자서전을 내기도 했을 정도다. 주룽지를 이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시절만 해도 전인대의 총리 기자회견은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

지질학을 전공한 원자바오이건만 고전에 조예가 깊어 중국 고사에서 끌어 쓰는 명문장의 답변이 많아 총리의 박식함과 중국의 깊이를 동시에 세계에 선전하는 효과도 있었다. 원자바오가 인용했던 고전의 경구를 모은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아무튼 중국 봄철 정치행사의 주인공은 중국 공산당의 1인자인 당 총서기가 아닌 서열 2위나 3위인 총리였다. 한데 원자바오 총리를 이은 리커창 총리 시대 들어 전인대 행사가 예전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워낙 강한 1인자 시진핑의 기세에 눌린 탓일까. 전인대 개막식 날 시진핑의 무거운 얼굴로 인해 행사 분위기가 싹 가라 앉았고 정부공작보고에 나선 리커창은 목이 잠기는가 하면 진땀까지 흘리는 모습이었다고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형식은 그대로 진행하고 있지만 주인공인 총리의 모습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진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중국 언론들도 시진핑의 말과 행동 전하기에 열을 올려 총리의 위상은 더욱 위축되는 모양새다.

중국 정가의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내년 가을에 열리는 19차 중국 공산당 대회 때 리커창 총리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중국은 무섭게 시진핑 1인 시대로 달려가고 있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