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정치는 구체적 사실들을 열거할 필요도 없이 서로 많이 다른 면목을 가졌지만, 사실은 똑같은 자산 한 가지를 갖고 있다. 말 또는 언어를 자산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두 분야는 말이 자산의 전부라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서로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의 말은 작가가 상상력으로 창조한 픽션이란 것이고, 정치의 말은 명백한 사실성 위에 존재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정가에서는 문학에선 잘 쓰이지 않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정치인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말 가운데는 ‘소설 쓴다’는 말이 있다. 전혀 근거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든지, 황당무계하다든지, 사실과 전혀 동떨어진 거짓을 빗대어 말할 적에 열에 아홉은 ‘소설 쓴다’고 말한다. 그런데 언론 매체를 통해서 이런 말을 듣게 되면,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분개하게 된다. 모멸감까지 느낄 정도다.
다른 분야도 아닌, 하필이면 정치인들 사이에 어째서 이런 말이 회자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나랏일을 경영하는 최전방에 서 있는 정치인들은 소설가를, 시쳇말로 ‘뻥’이나 치는 하찮은 부류들로 알고 있구나 하는 자괴의 심정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것에 가슴 뜨끔한 모욕감을 느낀다. 거짓말이나 생산해서 먹고사는 하찮은 인생이 바로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사회가 알고 있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거짓말의 위험성은 가짜의 기억을 양산한다는 데 있다. 일본이,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끈질기게 ‘소설 쓴다’고 부인하고 있는 것에 우리는 얼마나 분개하고 있는가. 그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질기게 주장하고 있는 것에 우리는 얼마나 모욕감을 느끼고 있는가. 그런데 일본의 위정자들이 끈질기게 이 문제를 소설 쓴다는 식으로 부인한다면 우리에게는 부지불식 간에 가짜의 기억으로 입력되는 치명적인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얘기한다. 그건 분명하다. 그러나 소설의 거짓말에는 독자들에게 진실과 감동을 전달하려는 보석 같은 의도가 숨어 있다. 그래서 꼼꼼하게 새겨보면 소설 속에는 허위나 거짓이 서 있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이 구사하는 언어에는,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말하거나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정치인들의 혀에는 하룻밤 사이에도 수십 명의 팔자를 그르치게 만들거나, 역사가 뒤틀어지는 치명적인 언어가 들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이 존재했는데도 모르쇠로 잡아떼는 경우를 우리는 불과 며칠 전에 언론 매체를 통해서 목격한 바 있다.
인간은 눈을 뜨는 순간 거짓말을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거짓말은 우리 모두가 정기적으로 저지르는 도덕적 범죄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나를 다스리는 일과 관계되는 말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일은 아니다. 두세 살짜리 철부지들이 하는 거짓말은 아주 단순하고 본색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것들이다.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이 빤히 보이는데도 지리지 않았다고 잡아뗀다든지, 입속에 밥을 물고 있으면서도 밥을 먹지 않았다고 둘러댄다든지 하는 것은 꾸지람을 피하기 위해 지어낸 말로, 체계적이지도 않고 계산적이지도 않다. 그야말로 순수한 거짓말인 셈이다.
그런데 성인으로서 자기가 한 일을 철저하게 숨긴다든지 모르쇠로 딱 잡아뗀다면, 그는 바로 세 살배기 지능밖에 가진 게 없다는 증거가 된다. 이런 사람이 나라를 경영하는 일선에 배치되어 있다면, 그런 난센스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거짓말은 죄악 아닌가.
자기가 내쏟은 말이 늑대가 되어 자기를 물어뜯는 치명적 불상사가 생기게 되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양치기 소년처럼 한두 번의 속임수나 거짓말이 통할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그 거짓이 자신의 목을 겨냥한 비수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우리 속담에 ‘방귀 잦으면 똥 싼다’는 말이 있다. 당장은 땜질로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재앙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분명 구린내가 나는데도 향기가 난다고 우긴다거나, 어머니 등에 업힌 젖먹이가 흡사 외계인처럼 생겨 혐오감을 주는데도, 볼 때마다 입으로는 정말 예쁘게 생겼다고 거짓말하는 게 우리네의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것도 자꾸만 반복되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젖먹이는 모르고 지나가겠지만, 그 어머니에게는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일 것이다.
얼마 전 영화를 감상하다가 그 화면에 등장한 여주인공이 자기를 깊이 사랑하고 있는 남자에게 건넨 한마디 대사가 생각난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날 위해 가족을 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아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중에는 정말 약속을 지키고 싶었으나 불가항력으로 지키지 못해 거짓말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나라를 경영하는 일선에 있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라도 거짓말을 버릇하거나, 있었던 일을 모르쇠로 잡아떼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나라가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이런 거짓말이 일상화한다면 양치기 소년처럼 비극적인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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