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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한국보다 뛰어난 오바마 창조경제

바람아님 2016. 4. 19. 00:45
[중앙일보] 입력 2016.04.1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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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논설실장


“스티브 잡스가 우리 생활을 바꿨다면, 머스크는 세상을 바꾸고 있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hot)한 인물이 일론 머스크다. 최근 그의 테슬라 전기차와 스페이스X가 기적을 이뤄냈다. 이달 초 공개한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는 일주일 만에 32만 대가 넘는 예약 주문이 밀렸다. 머스크가 “10년 내에 애플을 제치고 시가총액 800조원에 오르겠다”고 큰소리칠 정도다. 과연 10년 안에 40조원의 시총이 20배나 폭등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난 6년간 테슬라 주가가 15배 치솟았으니 빈말이 아닐 수 있다.

스페이스X가 지난 8일 우주 발사 1단 로켓을 바다 위에서 회수한 것도 놀라운 기적이다. 13년간 25번의 실패 끝에 일궈낸 성공이다. 우주 로켓은 1단 발사체가 가장 비싸지만 미항공우주국(NASA)은 무조건 바다에 폐기했다. 정부 예산이니 펑펑 쓴 것이다. 머스크는 개인회사 스페이스X를 세우면서 “1단 로켓을 회수해 재활용하면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출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는 2030년까지 화성에 인구 8만의 식민지를 만들어 그곳에서 환갑 잔치를 여는 게 꿈이다.

머스크는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한 뒤 이틀 만에 자퇴했다. 그리고 ‘집2’라는 인터넷 벤처를 세워 4년 뒤 컴팩에 넘겼다. 매각대금 250억원을 챙겼을 당시 그의 나이는 28살이었다. 웬만하면 청년갑부로 호화롭게 살았겠지만 그는 또 도전에 나섰다. 인터넷 결제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페이팔을 인수한 것이다. 4년 뒤 그는 페이팔을 1조7000억원에 이베이에 팔았다. 또 2002년엔 그 돈으로 스페이스X를 세웠고, 이듬해에는 공기가 없는 화성 식민지의 운반수단으로 테슬라 전기차를 인수했다. 영화 ‘아이언맨’이 주인공으로 삼을 만큼 머스크가 꿈꾸면 현실이 되었다.

과연 한국이었다면 머스크는 성공했을까? 100% 불가능했다. 스페이스X는 10년간 연거푸 로켓 발사에 실패했다. 사방의 싸늘한 눈초리 속에 그 도전을 눈여겨보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NASA였다. 미국은 로켓 발사 비용이 너무 비싸 지난 20년간 러시아·유럽에 밀려났다. 우주정거장 화물 운반도 러시아에 부탁할 정도였다. 하지만 NASA는 최고 전문가 답게 스페이스X의 실패에서 성공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과감하게 3조원을 베팅했다. 스페이스X는 파산 직전에서 간신히 살아났다.

테슬라도 한때 ‘죽음의 계곡’에 빠졌다. 전기차 설비투자가 집중되던 2008년 리먼 사태를 맞은 것이다. 머스크는 개인 재산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소용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혼까지 당했다. 머스크는 구글에 테슬라 인수를 부탁하는 SOS를 칠 만큼 궁지에 몰렸다. 이때 수호천사로 나선 게 오바마 정부였다. 2009년 “청정 에너지 전기차는 꼭 필요하다”며 5500억원을 긴급 투입한 것이다. 이후 테슬라는 날개를 달았으며 불과 4년 만에 구제금융을 모두 갚았다.

과연 한국 정부라면 돈키호테 같은 스페이스X와 적자에 허덕대는 테슬라를 구원해 주었을까. 아마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에서 난도질당했을 게 분명하다. 서울대 공대 이정동 교수는 “미국 창조경제의 원형질은 ‘실패도 공공자산’이라며 전 사회가 위험을 공유한다는 점”이라며 “스페이스X·테슬라 지원처럼 미 정부의 혁신친화적 공공투자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혁신센터를 순방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진짜 창조경제를 하려면 미국 오바마처럼 전문가 집단에 충분한 자율성을 주고, 그들의 눈으로 가능성 있는 벤처를 골라 집중 지원하는 게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지금 전 세계 정보기관들이 미국에서 가장 훔치고 싶어하는 것은 스텔스기나 미사일 방어체계가 아니라 일론 머스크라고 한다. 창의력이 곧 국력인 세상이다. 머스크는 이미 17조원의 자산가가 되었다. 하지만 더 부러운 건 그의 무모한 도전이 끝날 기미가 없다는 점이고,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까지 머스크와 우주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미국의 압도적 경쟁력의 비밀이 여기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