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 소설가
나는 교과서 한 권 없이 초등학교 6년을 마감했다.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항상 내 옆자리에 앉은 아이의 책을 곁눈질하면서 궁색하게 공부해야 했다. 곁에 앉은 아이가 내게 우호적일 때는 같이 읽기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나, 매몰차고 성깔 있는 아이를 옆자리에 두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수치스럽고, 치사하고, 미안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성적도 졸업할 때까지 내내 꼴찌 근처에서 맴돌았다. 다른 아이들은 구구단 같은 걸 얼음 위에 박 밀듯이 좔좔 암기하는데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드디어 대망의 교과서를 빠짐없이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책의 겉장도 손상을 입을까 해서 애지중지하였다. 나는 그날의 교과 시간표를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가진 모든 책을 보자기에 싸서 등교하기 시작했다. 나 없는 사이 우리 집을 찾아온 어른들이 책장을 북북 찢어 궐련을 말아 피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이나 어머니를 졸라서 작은 책장 하나를 마련했다. 책장이라고 해 보았자, 중식당 배달원이 자전거에 싣고 다니는 철가방의 규격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 작고 보잘것없는 책장을 방에 들여다 놓고 자다가도 불현듯 일어나 책장의 문을 열어보곤 하였다.
그 당시 내 책장에는 교과서 아닌 책도 한두 권 있었다. ‘새벗’이란 어린이 월간잡지였다. 외삼촌이 도회지로 여행을 갔다가 사다 준 선물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알게 된 것이,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70리 밖에 있는 소도시 서점에서 ‘학원’이란 잡지를 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또 어머니를 조르기 시작했다. 조른 대상은 어머니였는데, 책 살 돈을 준 사람은 ‘새벗’을 사다 주셨던 외삼촌이었다. 나는 그 돈을 들고 어린 나로선 엄두도 못 낼 70리 비포장 길을 걸어서 소도시에 도착했다. 그 책을 손에 넣은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고비 사막을 가로 지르는 여정처럼 하염없이 멀고 먼 고행의 길이었다. 양말도 없이 꿰 신은 고무신은 땀이 차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벗겨져 나중에는 신을 벗고 맨발로 걸었다. 한밤중에 집에 도착해서 이틀 밤을 꼬박 새워 그 학원이란 잡지를 읽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발은 부르터서 며칠간은 책장을 짜주었던 그 늙은 목수처럼 절뚝거리며 다녀야 했다.
책을 훔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는 그 작은 책장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욕심으로 눈이 시뻘게 있었다. 지금도 있지만, 내가 살았던 고향 집에서 시오 리 거리에 수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지금 보니까 그 절은 태고종이 분명한데, 그때는 조계종이 무엇이고 태고종이 무언지 알 턱이 없었다. 그 절에는 나와 같은 학년인 친구가 살았다. 그 친구의 초대로 수정사의 요사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 방구석 자리에 책 한 권이 뒹굴고 있었다. 쓱 당겨서 힐끗 보았더니, 이무영(李無影) 선생의 ‘산가(山家)’였는데, 그때 나는 그분이 어떤 어른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책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단편 소설들을 모은 책이란 것만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윗도리 속에 감추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길로 몰래 친구의 절집을 빠져나왔다. 나를 초대했던 친구가 책이 없어진 것을 당장 알아채겠지만, 그건 안중에도 없었다. 바로 그날 학교에서 친구와 다시 마주쳤다. 그런데 아침도 먹지 않고 줄행랑을 놓은 사실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70세의 나이를 훨씬 넘긴 얼마 전 고향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 시절에 내가 책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더니, 그 친구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먼 산만 바라보며 술만 냅다 마셔댔다. 중학교 시절 이후에도 책 도둑질은 계속되었으나 이무영 선생의 ‘산가’만은 50년 이상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숙희 선생의 한국현대문학관이 개관되었을 때 그 책을 도둑질한 책이라고 고백하고 기증하였다. 그런데 정말 기이한 반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책을 기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린 시절에 훔친 책의 주인공이셨던 이무영 선생의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나는 생시 때의 이무영 선생님을 뵌 적이 없다. 그런데 그분의 책은 훔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모질게 겪었던 궁핍이 나로 하여금 책에 대한 허욕을 갖게 하였고, 그것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일방적으로 훔치는 일에 몰두했던 것만은 아니다. 나 역시 지금 와선 희귀본이 된 몇 권의 저서를 도둑맞은 경험이 있다. 이병기 선생의 ‘시조집’, 신석초 선생의 ‘촛불’, 김동리 선생의 ‘황토기’와 ‘밀다원시대’, 황순원 선생의 ‘카인의 후예’, 손창섭 선생의 ‘비 오는 날’과 같은 책들이다. 이런 초판본들을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인데, 언제부턴가 서재에서 사라져 버렸다. 가슴 쓰린 일이다.
그 후 나는 절친한 사이일수록 서재에 사람을 들이지 않았다. 잃어버린 초판본들은 훔친 것도 아닌 끼니를 걸러 가며 산 책들이었다. 지금 내 서재에는 수천 권의 책이 있지만, 그중에는 읽은 것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그러니까 나는 책을 읽기보다 소유하기 위해 훔치고 사 모은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런데 읽지 못한 책들이 즐비한 그 서재에 혼자 앉아 있노라면, 세 끼 정도는 굶어도 배가 고픈 줄 모르는 것은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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