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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

바람아님 2013. 6. 28. 23:40


“핵무기는 언젠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특히 독재국가에서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허용돼선 안 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 그의 제자 강주상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휘소 평전’(2006)에서 이 박사의 핵무기에 대한 신조를

이같이 전했다.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인해 잘못 알려진 ‘핵무기 과학자’라는 오명을 씻어주고자 하는 바람과 함께.

이 박사는 1935년 1월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양친이 모두 의사였다. 어린 시절 과학, 추리소설, 문학 등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중학교에

입학, 화학반에 들어가면서 과학에 눈을 떴다. 6·25전쟁 중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으나 관심은 물리학에 있었다. 전과를 희망했으나

여의치 않자 미군장교부인회 후원 장학생에 지원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다. 마이애미대 물리학과를 1년반 만에 수석 졸업하고 4년 만에 석·박사를 마쳤다. 26세 나이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마지막 열정을 불살랐던 프린스턴고등연구원에 연구원으로 초빙됐다. 펜실베이니아대와 뉴욕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게이지이론의 재규격화’와 ‘참(charm)입자 탐색’ 등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세계 물리학계의 중심 인물로 부상했다. 연구를 함께했던

스티븐 와인버그(1979년 노벨물리학상)는 “이 상은 이휘소의 공”이라고 말했다.

미국 각 도시는 물론 프랑스, 소련 등 세계 각지에서 이 박사 모시기 경쟁이 벌어졌다. 그날도 그랬다. 1977년 6월16일, 학회 참석차

콜로라도로 향하던 중 고속도로에서 마주 오는 트럭과 정면 충돌,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떴다. 그의 나이 42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