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중심지 뉴욕 5번가에 돌풍이 불어닥쳤다. 풍성한 드레스로 한껏 치장하고 거리를 활보하던 여성들이 낭패를 봤다. 바람이 찬 드레스가 일순간 성능 좋은 열기구가 되어 여자들을 모두 하늘 위로 띄워 올렸던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거리에서 남자들은 허둥대며 사다리를 펴고, 다급한 마음에 우산으로 여자의 목을 낚아채기도 한다. 당시 유행하던 패션의 폐단을 풍자한 이 삽화<사진>는 미국 사실주의 화단의 일원이던 화가 윌리엄 글래큰스(Glackens·1870~1938)가 1905년에 뉴욕 헤럴드지(紙)에 발표한 것이다.
드레스 자락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것은 크리놀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유행했던 크리놀린은 철사와 고래뼈로 바구니처럼 둥그런 뼈대를 만들어 치마 속에 입는 페티코트다. 크리놀린은 여성들에게 관능적인 '모래시계 몸매'를 만들어 주었지만, 그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전성기 때의 크리놀린은 그 직경이 거의 2m였다고 하니, 이쯤 되면 옷이 아니라 무기다. 여자들이 테이블 옆을 지날 때마다 그릇이 우르르 떨어지는 것은 예사였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리놀린이 우산처럼 머리 위로 뒤집혀 민망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높은 곳에서 떨어진 한 여인이 크리놀린 낙하산 덕에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도 있으니, 글래큰스의 삽화가 허풍만은 아닌 셈이다.
미니스커트의 전설, 윤복희씨가 돌아왔다. 지금은 미니스커트를 넘어선 '하의 실종'의 시대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 언젠가 크리놀린이 되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외출 전에 그날의 풍속(風速)은 꼭 확인해야 할 것이다.
삽화-"5번가의 모래 폭풍"<사진>
미국 사실주의 화단의 일원이던
화가 윌리엄 글래큰스(Glackens·1870~1938)-1905년
(출처 : 조선일보 2011.04.26, 우정아 KAIST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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