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 보티첼리 '봄'

바람아님 2013. 7. 10. 08:47


울창한 나뭇가지엔 탐스러운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리고, 바닥엔 핑크색 꽃들이 부드러운 카펫처럼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에 우아하게 서 있는 여인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다. 오른쪽에선 꽃의 여신이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디며 꽃잎을 흩뿌리고, 큐피드는 어머니인 비너스의 머리 위에서 장난스레 눈을 가린 채 사랑의 활을 당기고 있다. 화살의 목표는 서로 손을 마주 잡고 둘러선 삼미신(三美神)이다.


그림 왼쪽에서는 신들의 전령 머큐리가 비너스 앞으로 몰려오는 먹구름을 쫓아내는 중이다. 오른쪽 위에서는 바람의 신이 아름다운 님프에게 부드러운 서풍을 불어넣고, 님프의 입술에서는 꽃이 피어난다. 온화한 바람이 찬 기운을 몰아내고, 메말랐던 가지에서 꽃들이 피어나며, 누구나 들뜬 사랑에 빠지는 계절, 바로 봄이다.


산드로 보티첼리(Botticelli·1445~ 1510)는 메디치 가문의 결혼식을 기념해 '봄'〈사진〉을 그렸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세계에서 이교(異敎)의 신들이 당당하게 그림 속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보티첼리가 당시 피렌체에서 흥성했던 신플라톤주의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비너스의 본성을 육체적인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지상의 미와 영혼의 완결을 지향하는 천상의 미로 구분하고, 천상의 비너스가 바로 성모 마리아의 다른 모습이라고 했다.

'봄'의 비너스는 고전적인 여신의 옷이 아니라 15세기 피렌체의 세련된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신부의 화관을 썼다. 여기서 그녀는 결혼하는 이들에게 풍요와 다산을 약속하는 지상의 여신이다.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 지배하는 계절, 지금이 바로 그 '봄'이다. 


(출처 : 조선일보, 2011.03.29  우정아 KAIST 교수·서양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