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7.01 박정훈 논설위원)
브렉시트는 英 대중 분노가 촉발 약자 좌절과 포퓰리즘 더 심한 대한민국의 '코렉시트' 우려 격차 해소는 당면한 시대 과제 약자가 활약할 제도 만들고 전체 파이도 키워야 |
#브렉시트: 대중의 분노와 포퓰리즘이 합작한 영국의 EU 탈퇴
영국 브렉시트의 1등 주범은 역설적으로 캐머런 총리다.
EU 잔류를 호소한 그가 브렉시트를 현실로 만든 장본인이 됐다.
그는 해선 안 될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순진하게도 캐머런은 영국 국민이 합리적 선택을 할 것으로 믿었다.
캐머런의 오판은 브렉시트라는 괴물을 불러낸 초인종이 됐다.
21세기 최악의 정치적 판단으로 불릴 법하다.
캐머런만큼 순진했던 정치인이 한국에도 있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공짜 복지' 논쟁이 한창이던 2011년 그는 돌연 무상 급식 주민투표를 들고 나왔다.
그 역시 서울 시민이 냉정한 선택을 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오 시장의 판단 착오는 무상 복지에 날개 달아준 결과가 됐다.
영국 사태를 보며 데자뷔(기시감)를 느꼈다는 사람이 많다. 브렉시트를 일으킨 동력은 영국 대중의 분노다.
세계화에 소외된 저소득층이 엘리트 정치권에 반란을 일으켰다.
약자(弱者)의 분노라면 우리가 영국보다 못하지 않다.
사회·경제적 소외 계층이 좌절하고 '헬조선'의 섬뜩한 절망 담론이 활개친다. 우리는 괜찮나.
영국처럼 비이성적으로 국가 진로가 탈선하는 일은 없을까.
1. 양극화: 브렉시트의 뿌리는 빈부 격차다. 저소득·저학력층이 압도적으로 EU 탈퇴를 지지했다.
브렉시트는 갑작스러운 돌출 사건이 아니다.
영국 사회엔 일자리를 위협받는 취약층의 불만이 휘발유처럼 뿌려져 있었다.
국민투표가 거기에 불을 댕겼다. 'EU가 내게 해준 게 뭐냐'는 불만이 브렉시트를 통해 폭발했다.
양극화가 분노의 토양을 형성하는 구조는 우리가 더하다.
상·하류층, 정규·비정규직, 대·중소기업 간 격차는 갈수록 커져만 간다.
그 격차는 양적(量的) 수준을 넘어 극복하기 힘든 질적(質的) 장벽이 됐다.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고 절망한다.
태어날 때 '흙수저'면 평생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의 운명론이 휩쓸고 있다.
양극화의 분노는 언제 폭발할지 모를 휘발성 재료가 됐다.
여론이 들끓었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이 상징적이다.
사망한 19세 수리공 김모씨의 인생엔 양극화가 빚어낸 처연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는 고졸 청년이고 비정규직이며 하도급 노동자였다.
기득권자인 공기업의 착취 계약에 생명까지 던져야 했다.
그의 가방에 든 컵라면과 수저가 대중을 울렸다.
브렉시트에 투표한 영국인이나 구의역 사건에 눈물 흘린 우리나 분노의 구조는 비슷하다.
2. 세대 전쟁: 영국 브렉시트는 5060이 주도했다.
젊은 세대는 인구·상품 이동이 자유로운 'EU 내 영국'을 원했다.
청년들은 EU 탈퇴가 경제를 망치고 미래를 훼손할 것을 우려했다.
'현재'와 '미래'의 대결은 수적 우위인 고령층 승리로 끝났다.
젊은 층은 "어른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해도 되느냐"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세대 전쟁은 좀 더 현실적인 생활 영역에서 불붙었다. 일자리 경쟁이다.
이 싸움은 청년 측의 일방적 패배로 진행 중이다.
괜찮은 일자리는 기성세대와 3040 중심의 정규직 노조가 성벽을 쌓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청년 세대가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패자(敗者)가 된 것이다.
취업난은 청년층의 인생 사이클 전반을 추락시킨다.
첫 출발이 삐걱대면서 나머지 인생이 연쇄적으로 꼬이고 있다.
연애도, 결혼도, 자식도 다 포기했다는 'N포 세대'가 등장했다.
"짱돌을 들고 저항하라"고 촉구하는 '짱돌론'까지 등장했다.
3. 포퓰리즘: 브렉시트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반란이다.
집권당과 야당 모두 잔류를 호소했으나 국민은 외면했다.
대중은 정치 엘리트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 틈을 포퓰리즘이 파고들었다.
패라지 영국독립당 당수 같은 선동가들이 선정적 논리로 EU 탈퇴를 선동했다.
한국의 정치 포퓰리즘은 훨씬 더 노골적이고 광범위하다.
영국처럼 일부 선동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온 정치권이 표를 돈으로 사려는 인기 영합주의를 치닫고 있다.
국가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파 이익에 매달리는 정치꾼들이 판치고 있다.
격차 해소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시대정신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돈만 퍼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시스템 전반의 청사진이 필요한 고도의 전략 과제다.
약자가 활약할 생태계와 제도를 만들고, 전체 파이도 키워야 한다.
격차 해소를 명분으로 경제 활력을 꺼트리는 포퓰리즘 대책은 해법이 될 수 없다.
미래를 망칠 뿐이다.
역사상 포퓰리즘이 대중의 분노에 올라탔을 때 결과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우리에게도 '코렉시트(Korea+Exit)'의 운명을 걱정해야 할 순간이 왔다.
국가 진로가 미래로 향하는 궤도를 탈선해 표류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당장 내년 대선이 시험대다.
#코렉시트: 약자의 좌절과 포퓰리즘이 합작한 대한민국의 미래 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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