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며 만드는 에너지와 힘, 대조적 매력을 드러내기 위해 태극기의 빨강과 파랑을 핵심 컬러로 선정해 'CREATIVE(빨강) KOREA(파랑)'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새 국가 브랜드 선정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국민 공모 등 통해 '한국다움' 키워드를 '창의 열정 화합' 3가지로 압축했고, 전문 기관 의견 수렴 거쳐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확정했습니다. 현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던 '창조 경제'와도 맥락이 닿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징이 정말 'CREATIVITY'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조적인 현실, 청년 취업 준비생 절반이 '공시족'인 현상입니다. 불황을 타지 않는다는 노량진 학원가를 가면 각종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몇 년 째 머무는 청년들을 쉽게, 너무도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거나 한 경험이 있는 20~24세 취업 준비생은 47.9%, 25~29세는 53.9%에 달하고 있습니다. 20~24세 시험 준비자는 9급 공무원 시험(63.7%), 교원 임용시험(17.4%)을 준비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25~29세도 9급 공무원 시험(45.5%), 교원 임용시험(14.8%), 7급 공무원 시험(11.8%) 등이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불경기 때 공공 부문이 주요한 고용 시장이 되는 게 이상한 현상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과도하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물론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비교적 장래가 안정적인 직업을 추구하는 청년 개개인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청년들이 이렇게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게 됐는지, 그 원인을 제공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취업도 어렵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등 불안한 상황에서 '창의적'인 사고가 직업 선택에 발휘되긴 쉽지 않다는 겁니다. 창의적이고 좋은 일자리가 나오려면 시장이 역동적이고 기업이 투자에 나서야 하는데, 기업들은 불확실성을 이유로 좀처럼 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 중학생들이 알고 있는 직업이 몇 십 개가 채 안 된다는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인공지능 등 기술의 발달로 지금 있는 직업들의 상당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세상인데, 여전히 우리 학생들의 장래 희망은 '의사' '판사' '변호사' '교수' 일색입니다.
이런 직업들이 존경을 받는 좋은 직업임엔 분명하지만, 새로운 생각으로 상상력을 발휘해나가야 할 어린 시절부터 이른바 '돈 잘 벌고 안정적인 직업'을 쫓는 세태는 앞으로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가치인 '창의' '창조'와는 어울린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비(非)창의, 비(非)창조'는 재기가 어려운, 한번 실패하면 낙인 찍히는 사회의 단면에서 나타납니다.
한때 '벤처'에 대해 '묻지마 투자' 열풍이 일 정도로 창업 열기가 뜨거웠던 한국, 최근엔 그 추세가 많이 꺾였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바로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어려운 사회라는 현실 때문입니다.
투자금을 날리고 망했을 경우 그 사유나 과정이 비윤리적이고 고의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창업 아이디어 단계를 현실화시키는 것부터 도와서 엔젤 투자를 받게 연결하고, 기술력을 키워 성장을 유도하다가 설령 실패하더라도 재기를 돕는 게 바로 '창업 생태계'입니다.
정부는 매번 창업 생태계 조성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 창업 경험자들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한번 실패'는 '평생 실패자'로 낙인 찍히는 사회 속에서는 작은 아이디어일지라도 그걸 바탕으로 창업하는 가능성을 꿈꾸기 어렵습니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우리나라 청년들의 창업 선호도는 중국에 비해 턱없이 낮습니다.
한국무역협회가 내놓은 보고서 '한·중·일 청년 창업, 중국 열풍·일본 미풍·한국은…'에 따르면 국내 대학(원)생의 창업 선호 비율은 6.1%로 중국의 40.8%에 비해 매우 낮았습니다. 특히 국내 청년들의 창업 희망 분야도 생계형·저부가가치형에 편중되고, 창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큰 것으로 나타나 경쟁력 있는 청년 창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중국은 최근 몇 년 간 IT 창업 기업의 약진, 창업을 응원하는 사회적 분위기, 창업 인프라 조성 노력 등에 힘입어 청년들의 창업 선호도가 높은 반면 한국은 안정적 직장 선호와 경쟁력 있는 창업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 창업 활기가 저조한 것으로 무역협회는 분석했습니다.
한국 청년들은 주로 취업이 어려울 때 그 대안으로 창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국은 그런 경우가 한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취업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창업을 선택하면서도 실패에 대한 부담은 무엇보다 큰 창업 장애 요인이 되고 있었습니다.
창업 업종에서도 그 차이가 드러납니다. 국내 대학(원)생들은 또 요식업(31.3%) 등 생계형 창업 의향이 가장 높았으나, 중국 청년들은 혁신형 창업과 연관된 IT분야(20.1%)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창조성' '창의성'을 격상시키기 위해 반드시 개선돼야 하는 것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중시와 경제적 가치의 인정' 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적재산권, 서비스 등에 대해 유독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우리나라의 풍토는 많이 과거보단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서는 부족합니다. '카피 좀 하면 어때' 지적재산권을 공짜로 써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그것입니다.
심지어 중국도 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지적재산권 국가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세계 특허 출원 중 3분의 1이 중국 내에서 이뤄지고 있어 최근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화웨이의 소송과 같은 ‘특허전쟁’에 대비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중국 내 지적재산권 출원 건수는 967만 건으로 세계 출원의 46.7%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지적재산권에서도 중국 내 특허 출원이 95년 1만 9000건에서 2014년 92만8000건으로 급증해 세계 특허 출원 세 개 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미국은 57만 9000건으로 21.6%, 일본은 32만 6000건으로 12.2%를 차지했고, 한국은 21만 건으로 7.8%에 그쳤습니다.
이렇게 중국 현지 기업들의 소프트파워가 강해지고 있어서 특허 분쟁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는데, 중국 내 특허소송 건수는 2014년 7671건으로 직전 3년 간 연평균 86%씩 늘어서 우리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소송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Creative Korea'를 떠올려 봅니다.
저녁 10시 학원이 끝날 때마다 대치동 학원가에 때아닌 러시아워가 빚어져 차가 엉키는 나라, 객관식 정답을 누가 더 많이 맞느냐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고 직업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 뾰족한 수가 없을 때 너도나도 음식 장사에 나서 서로 출혈 경쟁하다 같이 망하는 나라, 정부가 '창조 경제'를 몇 년 째 강조하고 있는데, 정작 창조 경제가 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나라,
국가 브랜딩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정부는 전세계 GDP 11위인 한국이 국가 브랜드 지수는 27위에 불과해 이로 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즉 새로운 국가 브랜딩을 통해 코리아 프리미엄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류' 처럼 긍정적인 '창의적' 역량을 세계에 떨치는 분야도 있습니다. 다만 국가 브랜딩이 전반적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그저 구호로 그쳐 공허할 뿐입니다.
정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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