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싸고 온통 '사드' 논란이 뜨겁습니다. 군사, 외교, 정치, 지역 등의 다양한 이슈와 결부돼 있는데, 경제 분야 취재를 맡고 있는 저로서는 사드 배치에 따른 대중국 무역의 영향이 큰 관심사입니다.
각계에서 일단 중국의 반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경하고 전투적이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 관영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 직후 사드 배치와 관련된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을 차단하고 사드 배치를 주장한 한국 정치인의 중국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네티즌의 90%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한국에 제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는 인용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결산회의에서 "중국이 정치와 경제는 분리할 것으로 예측한다"면서 "대규모 보복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그에 상응하는 플랜을 짜고 있다고 하면서도 "한중간 경제관계가 급전직하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유 부총리의 말대로라면 중국은 정치 이슈인 사드와 경제 이슈를 이성적으로 잘 구별할 거고, 중국인들도 반한 감정을 설령 가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한류 컨텐츠와 한국 제품을 소비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우리 정부가 안심하는 근거 중 하나는 한중 FTA가 발효돼 있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인 만큼 협정을 위반하며 경제보복을 할 가능성이 적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과거 이런 장치들이 없었을 때보다는 노골적 견제와 방해는 현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통상 전문가들이 중국의 보복이 아예 없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은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추세와 맞물려 한국 수출품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점점 키우고 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중국의 대 한국 보호무역 현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수출품에 대한 중국의 반덤핑 조치를 보면 2000~2008년 46건에서 2009년~2015년 8건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위생 또는 검역은 249건에서 887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기술장벽 건수도 507건에서 681건으로 증가했습니다. 즉 중국의 비관세장벽이 통관조치 뿐 아니라 기술장벽, 위생장벽 등으로 다양해지고 빈도도 더 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가벼운 부분을 문제 삼아 통관거부를 하는 일들입니다. 2013~2015년 중국이 한국 수출품에 대해 통관거부를 한 건수는 499건인데, 이 가운데 70%가 가공식품입니다. 그 사유를 보면 포장 불합격이 100건으로 가장 많고, 라벨 불합격이 39건입니다.
이미 이런 식의 '트집잡기(?)'가 공고해지고 있는데, 사드 배치로 한중 간 긴장관계가 고조될 경우 어떤 형식의 비관세 장벽이 더 추가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의견을 구하기 위해 인터뷰이로 만난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위원도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과거 마늘 파동은 한국이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거기에 보복하기 위해 취한 중국의 조치로 '통상 대 통상’의 이슈였다면 이번 사드는 그것과 성격은 다소 다릅니다. 게다가 WTO와 FTA 규정을 어기지 않고 중국 정부가 합법적으로 우리 기업들을 곤란하게 할 수단은 예전처럼 많지 않을 것이란 해석도 내놨습니다.
그렇지만 김 연구위원 역시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이유는 바로 '비공식적이고 비전통적인' 제재 수단이 충분히 많고, 그 영향력도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중국 국민들의 반한 감정이 거세질 경우 한국제품 불매운동 등의 시위를 할 때 중국 정부가 그냥 방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 소비자들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수 있어 '정서적인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서는 한국 소비재 수출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됩니다. 사드 발표 당일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등 대표적인 중국 소비재 주가가 곤두박질 친 것도 시장은 벌써 이런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중국 정부가 시위만 방치하는 게 아니라 아주 소극적인 듯 하지만 상당히 의미 있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이 있습니다. 세관 검사를 할 때 한국을 다녀오는 여행객들에 대한 소지품 검사 강도를 세게 하면 여행상품 자체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건 실제 유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올해 초 '하나의 중국'을 반대하는 타이완의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이 취임했을 때, 양국 간 긴장이 상당히 고조됐습니다. 당시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타이완행 중국 관광객의 할당 인원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방법으로 결국 타이완행 관광객이 30% 정도 줄었다고 업계에선 파악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양안관계의 주도권을 중국이 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중 45%가 중국인이라는 통계를 굳이 다시 꺼내지 않아도 면세점과 주요 관광지마다 중국인들이 한국 제품을 소비하는 주축의 세력으로 자리잡은 지 오랩니다. 자연히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또 중국이 반드시 외교 이슈를 경제로 전이시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도 중국으로부터 무역 보복을 받아 완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2010년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중국 선장이 일본에 체포되자 중국은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희토류는 첨단 제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로 일본은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는데, 결국 일본은 선장을 17일 만에 풀어주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지난해 26%였습니다. 중국에 대한 수출은 1천371억 달러로, 미국 698억 달러, 일본 255억 달러를 합한 것보다 많습니다. 중국에 대한 무역 흑자는 468억 달러로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 258억 달러보다 200억 달러 이상 큽니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는 202억 달러 적자입니다. 중국이 한국 경제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높은 의존도 때문에 중국 눈치를 보고 아무것도 독자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라도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요도만큼이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중국 장화이 자동차는 삼성SDI의 배터리를 장착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 ‘iEV6s’ 생산을 최근 중단했습니다. 지난달 삼성SDI의 배터리가 중국 정부의 인증을 통과하지 못한 데 따른 조치라고 알려졌지만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이에 따른 중국의 대응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또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 신규 공모 발표를 사드 배치 결정 시기에 맞춰 한 것을 한국에 보낸 신호로 보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 사례는 시점상 우연히 일치한 것을 지나치게 과도하게 연계시키려는 것이란 의견이 저 개인적으론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래도 언급을 하는 건 이제 중국은 '보조금'이라는 자국 내 수단을 사용하거나 ‘국제기구’를 통해서 압박을 하는 등 더 다양해진 방법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입니다.
불필요하게 과장된 불안을 조장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근거가 부족한 낙관으로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은 길게 가지 못합니다. 지금쯤 정부가 외부적으론 담담한 의견을 내면서 내부적으론 아주 치열하게 여러 경우를 상정한 치밀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정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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