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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 명작 기행](3) 현란한 色ㆍ활기찬 線…'과학기술 예찬' 들리는가

바람아님 2013. 7. 24. 12:31
● 佛 화가 로베르 들로네의 '에펠탑'

테크노풍의 '노래하는 에펠탑'
연두·오렌지 빛의 조화 황홀하구나!
               


파리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에펠탑이 얼마나 눈에 밟히는지 잘 알 것이다. 특히나 6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보기 힘든 구시가에서 녀석의 눈길을 피하긴 쉽지 않다. 사방을 두리번

거리다 보면 어떻게든 마주치고야 마는 녀석의 모습은 때론 반갑기도 하고 때론 지루하게도

느껴진다. 잠시 안보이다가도 몇 발자국 옮기다 보면 금세 골목사이로 녀석의 집요한

눈초리가 나를 응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에펠탑은 밤에 좀 더 볼 만하다. 금빛을 발하는 수많은 전구로 몸을 두른 채 서치라이트를

켜고 사방을 둘러보는 모습은 꽤나 눈부시다. 그렇지만 서치라이트의 고갯짓은 왠지

스토커의 눈길처럼 섬뜩하다. 글쎄,나만의 생각일까.

이젠 파리의 상징이 됐지만 건설되던 당시만 해도 이 밋밋하고 싱겁게 키만 큰 철탑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미운 털

박힌 존재였다.

에펠탑은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에 때맞춰 개최된 1889년의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것으로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했다. 당시 세계 최고인 300m 높이의 철제 탑이

건설된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온 나라가 들끓었다. 소설가 모파상과 뒤마 피스,작곡가

구노,건축가 샤를 가르니에 등 문화계 저명인사들은 '아무 쓸모도 없는 공룡 같은 탑'의

건설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정부에 제출했다. 결국 탑을 20년 후에

철거한다는 조건으로 반발은 봉합됐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에 밟히는 아무

장식도 없는 철골조의 뾰족탑에 저마다 넌더리를 냈다.

소설가 조리-카를 위스망은 에펠탑을 두고 "공사 중인 공장의 배관,자갈과 벽돌로 채워지기

전의 골조 같은 이 깔때기 모양의 격자 쇠창살,이 구멍투성이의 좌약 같으니"라고 신랄하게

야유했다. 시인 베를렌은 뼈다귀 같은 이 거대한 망루를 보지 않기 위해 평소 다니던 길을

마다하고 빙 둘러 다녔다고 하며 모파상은 1890년 발표한 자신의 소설 '방랑생활'을 통해

이 거대한 탑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나는 파리를,아니 심지어

프랑스를 떠났었다. 왜냐하면 에펠탑이 나를 너무나도 지긋지긋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고

뇌까린다.

그러나 한 쪽에서는 이 거대한 기하학적 철골 구조물을 근대 과학기술의 상징적 존재로 받아 들이고 열렬히 찬양했다.

쇠라,시냑,마르크 샤갈,뒤피는 그런 인물들의 대표였다. 19세기 말은 전깃불,전화,자동차,전축 및 라디오가 발명된 데

다가 블레리오에 의해 영불해협 비행이 성공함으로써 과학기술이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에 그야말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던

시기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놀라운 신세계의 모습을 새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놓칠 리 없었다.

이탈리아의 시인 마리네티는 그러한 예민한 눈썰미를 지닌 예술가였다. 그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미래주의' 운동을

전개했는데 파리의 '르 피가로'지에 발표한 선언문을 통해 기계문명의 위력을 열렬히 찬양하면서 낡은 시대의 유물로 가득 찬

박물관과 도서관을 파괴하자고 선동했다.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미술가들이 파리와 런던,베를린 등에서 전시를 가지면서

미래주의 운동은 점차로 국제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들 미래주의자들의 눈엔 비너스 여신상보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프랑스 화가 로베르 들로네도 이 새로운 움직임에 공감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앙데팡당전(인디 작가전)의 단골이었던 이

비타협적인 작가는 에펠탑만 30점 넘게 그린 에펠탑 마니아였다. 처음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대상을 기하학적 형태로

단순화해 한 화면에 결합한 입체파에 공감,에펠탑을 해체된 모습으로 표현하다가 점차 색채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좀 더

통합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한다.

1926년에 그린 '에펠탑'은 그가 15년 이상 지속해 온 에펠탑 시리즈의 정점이자 마침표를 찍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샹 드 마르스 공원을 배경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에펠탑을 표현한 이 반(半)추상적 풍경화는

현란한 색채와 율동감 넘치는 형태감이 보는 이의 시선을 자극한다. 보색 대비를 이루는 연두와 오렌지 빛 색면이 직선과

곡선의 형태 사이를 사뿐히 미끄러져 나간다.

그것은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를 색채의 스펙트럼으로 표현한 것 같다. 에펠탑은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시인 아폴리네르는 들로네의 전시를 보고 난 후 그의 그림에 '오르피즘'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의 이름을 딴 이 용어는 음악적 회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자,그러면 귀 기울이고 에펠탑이 부르는 노래를 한번 들어보자.녀석이 부르는 노래는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발라드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기계문명을 예찬하는 아리따운 로봇의 비트 넘치는 테크노가 아닐까. 미국 여가수 셰어의 '빌리브'처럼.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한경기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