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숨어 있는 세계사] 칭기즈칸의 정복 전쟁, '건조한 날씨' 탓에 시작되다

바람아님 2016. 9. 8. 07:44

(출처-조선일보 2016.09.08 윤형덕 하늘고 역사 담당 교사)

[기후가 바꾼 역사]

초원 풀 줄어 어려움 겪던 몽골족
흩어졌던 유목민들 통일해 살기 좋은 지역 찾으려 전쟁 시작
14세기 유럽 소빙하기 때 바이킹족은 기후 적응 못 해 사라져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끝나고 어느새 가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어요. 

올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어요.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지구 온도는 14개월 연속으로 최고 기록을 넘어섰답니다. 

중동 지역은 한때 최고기온이 50도를 넘기도 했고요. 전 세계에 날씨가 유독 더운 '이상기후'가 나타난 것이죠. 

이상기후는 예상치 않은 가뭄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을 가져와 많은 피해를 낳기도 한답니다.

이상기후는 지구온난화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에요. 지구의 기후는 자연적으로 수백 년, 수천 년 단위로 계속해서 

변화한답니다. 그리고 이런 기후변화는 때때로 역사를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칭기즈칸이 정복 전쟁에 나선 이유는?

많은 역사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위세를 뽐냈던 나라로 13세기 무렵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한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을 

꼽아요. 동쪽으로는 중국 전체를, 서쪽으로는 중동을 지나 동유럽 일부를 지배한 몽골제국의 넓이는 우리나라 영토

(약 10만㎢)의 약 330배가 넘는 3300만㎢에 달한 것으로 추정돼요.

몽골족은 왜 하필 이 시기에 정복 전쟁을 벌여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걸까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학자들은 당시 기후변화가 정복 전쟁의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몽골족은 원래 초원 지역을 돌아다니며 목축을 하는 전형적인 유목 민족이었어요. 

풀이 많이 자란 곳에서 말을 키우고, 풀이 고갈되면 다시 풀이 잘 자란 지역으로 이동하며 살아가죠. 

그래서 유목민들은 말을 키우기 좋은 초원 지역을 굳이 벗어날 이유가 없답니다.

13세기 말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군과 맘루크 왕족의 군대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그린 그림(왼쪽)과 그린란드에 처음으로 도착한 바이킹 ‘붉은 머리의 에리크’를 그린 그림(오른쪽)이에요.
13세기 말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군과 맘루크 왕족의 군대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그린 그림(왼쪽)과 그린란드에 처음으로 도착한 바이킹 ‘붉은 머리의 에리크’를 그린 그림(오른쪽)이에요. /위키피디아

그런데 학자들이 몽골족이 살았던 초원 지대의 오래된 나무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 칭기즈칸이 정복 전쟁에 나섰던 시기에 

이 지역에 '이상건조기후'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어요. 초원 지대에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자 풀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자연히 풀을 먹고 사는 가축 수도 줄어들었을 거예요. 학자들은 칭기즈칸이 이상기후로 어려움에 놓인 몽골 부족들을 

통일한 뒤 말을 키울 수 있는 초원 지대를 찾아 정복 전쟁을 벌였을 것으로 추측해요. 

몽골족이 13~14세기 세계사의 중심에 나타나게 된 배경에 초원 지대에 나타난 이상건조기후가 있었던 것이죠.

오스트리아 근처까지 진격했던 몽골족이 서유럽을 공격하지 않은 것에도 기후변화의 영향이 있었어요. 

몽골군이 유럽에서 물러나던 때 초원 지역의 기후는 서늘하고 비가 자주 오는 기후로 바뀌었답니다. 

비가 내리면서 초원 지역에 다시 풀이 자라자 몽골족들은 굳이 새로운 초원 지역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죠.

◇이상기후에 적응 못 한 그린란드의 바이킹

그린란드 누크 위치 지도북아메리카 북서쪽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섬 그린란드는 육지의 80%가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요. 이 땅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얼음집 '이글루'로 유명한 
이누이트족입니다. 이누이트족은 농경과 목축 대신 사냥과 고기잡이로 그린란드의 
혹독한 환경에 적응했어요. 눈으로 이글루를 짓고 바다표범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어요. 바다표범의 가죽을 배에 씌워 먼바다까지 나가 고래를 사냥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985년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된 바이킹 '붉은 머리 에리크(Eric the red)'가 
그린란드를 발견했어요. 당시 유럽은 비교적 날씨가 따뜻한 '중세 온난기'였답니다. 
그래서 그린란드 남부 지역에도 풀이 잘 자라 목축을 하기에 큰 무리가 없었어요. 
에리크가 섬 이름을 '그린란드'로 지은 것도 풀과 나무가 풍성한 풍경을 보았기 
때문으로 추정돼요.

이후 다른 바이킹도 하나둘 그린란드로 이주하면서 그린란드에는 바이킹의 거주지가 형성되었어요. 
그린란드의 바이킹은 목초지에서 목축하는 동시에 이누이트족과 영토·자원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답니다.

그런데 14세기 날씨가 추워지는 소(小)빙하기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린란드에도 매서운 추위가 닥치면서 풀과 나무가 줄어들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로 가는 해로는 유빙(바다에 떠다니는 얼음)이 가로막았고, 
유럽 대륙에는 페스트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어요. 
그린란드의 바이킹은 목축도 할 수 없고 유럽 대륙과도 완전히 고립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죠.

목축도 교역도 할 수 없게 된 바이킹 사람들은 굶주림에 쓰러져 죽어가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먹을 것이 없던지 옷의 단추나 짐승의 발굽을 먹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그린란드의 바이킹은 15세기 이후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어요. 
학자들은 "그린란드의 바이킹이 소멸한 건 이누이트족을 야만인으로 취급하고 
그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폐쇄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린란드의 바이킹은 목축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물고기를 잡을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다고 해요.

기후의 급격한 변화는 이렇게 대제국이 탄생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한 문명이 소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지구온난화라는 급속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오늘날 인류는 기후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는 걸까요?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