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7.2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갈등이 빚어낸 이해관계로 마치 고양이가 한바탕 갖고 논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겠다며 여럿이 제가끔 실을 잡아당기면 자칫 더 심하게 꼬인다. 세상 많은 일이 여럿이 함께 거들면 쉬운 법이지만 실타래를 푸는 일만큼은 예외이다. 한 사람이 침착하게 한 올씩 풀어야 한다. 지금 우리 정부에 확실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려 크노소스 궁전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곳은 건축의 신인 다이달로스가 작심하고 미궁으로 만든 곳이라서 테세우스가 설령 괴물을 죽이는 데 성공하더라도 출구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쥐여준 실 덕택에 무사히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 거대한 실타래 속에서 과연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을 수 있을까?
때로는 문제 자체에 코를 박기보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기원전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는 자신이 아끼던 수레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곤 절대로 풀 수 없는 매듭으로 묶은 다음 그걸 푸는 자가 아시아를 정복하리라 예언했다. 그 후 많은 사람이 그 매듭을 풀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던 어느 날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동진하던 알렉산더 대왕이 전설의 매듭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 단칼에 잘라냈다고 한다.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는 때로 대담하고 근원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전후 독일은 화약 냄새보다 부패의 악취를 먼저 제거하기로 했다. 법치국가를 세우면 경제 발전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동일한 길을 걸었다. 지금 이 두 나라는 세계에서 홀로 탄탄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참기 어렵다. 다 같이 맞으면 덜 아픈데 나만 혼자 맞으면 훨씬 더 아프다. 원칙을 중시하고 약속을 지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께 감히 고하련다. 대한민국이 진정 동아시아 시대를 이끌려면 법과 상식의 칼로 단호히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시라고. 국민의 신뢰를 얻어 대통합을 이루는 길은 이 길 하나뿐이다.
(참고-관련 이미지)
"Alexander cuts the Gordian Knot"-Jean-Simon Berthélemy(1743–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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