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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6] 소금

바람아님 2013. 7. 21. 08:59

(출처-조선일보 2009.07.17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소금은 사람의 생명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물품이다. 사막을 건널 때 물 부족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소금 부족이라고 한다. 바닷가에서 먼 내륙 지방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경우에는 암염 광산이 가깝지 않으면 소금 장사꾼들이 닿을 수 있어야만 한다. 과거의 권력 당국은 이처럼 반드시 소금 공급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세금을 걷었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소금 거래에 소비세를 부과하는 것만큼 손쉬운 징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생산 원가로만 따지면 소금은 아주 싼 물품이어야 하지만 높은 세금이 붙다 보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경우 1630년에는 소금 가격이 생산비의 14배였으나 1710년에는 140배가 되었다. 가벨(gabelle)이라 불리던 염세(鹽稅)는 늘 서민들의 원망 대상이었다. 높은 세금은 자연히 암거래와 관리의 부정부패를 초래했고, 이에 맞서 당국은 범법자를 가혹하게 처벌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785년에 알비주아라는 지역에서 암거래를 하다가 붙잡힌 푸르니에라는 사람은 200리브르라는 거액의 벌금에다가 "형리가 허리까지 옷을 벗긴 다음 대로를 끌고 다니다가 공공장소에서 채찍질을 한 다음 광장에서 오른쪽 어깨 위에 달군 쇠로 대문자 'G'의 낙인을 찍는" 처벌을 받았다. 'G'는 갤리선(galley 
)을 뜻하는 것으로서, 다음번에 다시 걸리면 평생 갤리선에서 노를 저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염세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봉기도 끊이지 않았으나, 이에 대해서도 당국은 심지어 주동자를 사형에 처하면서 억압하려고만 했다.


프랑스군의 원수(元帥)였던 보방(1633~1707)은 심각한 조세 문제의 해결 방안을 논하는 책을 썼는데, 그 안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팔다리의 상처로 인해 몸이 고통받으면 머리 또한 고통받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고통이 재빨리 머리(즉 국왕)에 이르지 않으면 괴저병에 걸린 것과 같다. 그 병은 조금씩 신체를 잠식해서 온갖 부위를 부패시키다가 심장에 이르러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국왕은 백성에게 필수품을 박탈할 정도의 과중한 부담을 안겨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마치 프랑스혁명을 예견한 것처럼 보인다. 결국 '세금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혁명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참고 이미지 - 갤리선(gall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