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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피터' 연극인 추송웅

바람아님 2013. 7. 29. 12:39


“그저 연극이 좋다는 이유로 억지로 만들어낸 연극은 정신적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비싼 입장료를 치른 관객들에게 죄악이다. 연극은 분명

상(商)행위요, 관객은 소비자들이다.”(추송웅 자전에세이 ‘빠알간 피이터’ 중)

‘모노드라마의 거장’ 연극인 추송웅 선생은 어린 시절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194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사팔뜨기’란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워 교장선생님이던 아버지한테 수시로 혼났다.

중학교 2학년 때 감행한 가출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서울에서 우연히 영화 ‘다이얼M을 돌려라’를 본 뒤 연기자의 꿈을 품게 된 것.

집으로 돌아와 부산공고에 들어간 그는 3학년 때 사시 교정수술을 받고 중앙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다. 극단 ‘민중’의 연극 ‘달걀’로 데뷔,

단역을 이어가며 내공을 쌓았다.

추 선생은 1977년 한국 연극사에 남을 만한 시도에 나섰다.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를 각색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을 기획해 제작·연출·연기·장치까지 1인5역을 맡았다. 연기를 위해 창경원 원숭이 우리 생활도 했다. 결과는 대히트였다. 8년간 500회가

넘게 무대에 올렸다. 1979년 시작한 1인극 ‘우리들의 광대’까지 500회를 넘기며 연극계의 ‘신화’가 됐다.

관객들에게 최고의 상품을 팔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무대에 쏟아부었던 그는 일본 공연을 앞두고 있던 27년 전 오늘, 감기 기운이 있다며

병원에 들르고는 다시 무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급성패혈증 진단을 받고 들어간 수술실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44세였다.